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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속의 척박한 땅덩어리, 중국

 

- 열세 걸음

 

제목은 러시아의 참새에 관한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참새의 걸음 수에 따라 온갖 행운이 따라오지만 열세 걸음에는 극악한 불행이 몰려든다는.

 

소설은 그렇게 열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열두 장이 그렇다고 모두 행복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에겐 행운이고 누군가에겐 불행인, 그렇게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진행될 뿐이며 마지막 열세 걸음에서는 그 이야기의 씁쓸한 마무리가 지어진다.

 

이야기성이 풍부해 매우 재미 있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시점과 시간 배열이 뒤섞여 있고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뒤섞여 있는데다 사회주의 시대의 중국의 사회상에 대한 패러디가 곳곳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굳이 따져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들이 리얼리즘의 법칙에 따르지 않고 진행되고 있으니 엄밀하게 알레고리도 판타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 생각에 이 소설은 알레고리 장르에 가장 가까운 듯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일반적인 자본주의 사회와 크게 다를 게 없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다르다. 작가의 의도는 사회 속에서 주체성을 잃은 개인들과 그들의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확실히 내 눈에는 차이점이 눈에 띤다. 예를 들면 과부의 정사를 옹호하는 장면 같은 것들. 사회적 이익(물론 그럴싸한 명분일 뿐일 때가 더 많지만)을 위한 논의의 장. 육체노동을 정신노동에 비해 가볍게 보지 않는 풍조. 그러한 것들은 작가의 관점과 달리(실질적 측면에서는 모순이 있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미래지향적인 측면이 아닐까.

작가의 여성혐오적 태도는 극히 심각하다. 강간 당한 여성이 성욕에 휩싸이고 가해자를 찾는다거나, 여자를 생물학적 암컷으로만 취급한다거나, 여성을 악의 근원으로(창녀론) 본다거나 하는.

 

그럼에도 이 소설은 걸작이다. 어려운데 막히지 않고, 재밌는데 우습지 않다. 비현실적이지만 현재를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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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살무사의 피를 찍어 빗자루로 쓰다

 

- 제비뽑기

 

처음 읽어본 셜리 잭슨의 소설. 대부분 엽편 분량이지만 작품마다 분량에 구애 받지는 않은 듯 보인다. 살무사의 피를 찍어 빗자루로 쓰다, 는 그의 작품에 대한 감각적 총평이다. 인간의 다양한 악에 대해 자비심 없이 기술한 그를 마녀로까지 몰아갔다니, 오히려 내겐 매혹적인 그의 작법을 두려워한 인간들의 심리를 엿본 듯하다.

 

굉장히 많은 작품이 실려있고 뻔한 결말을 향해 가는 작품도, 그저 일상의 기술에서 그친 작품도, 놀라운 통찰력이 있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총평처럼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인간이 숨기지 못한 악을 향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찾아보려 한다.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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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낯설고도 익숙한 존재

 

- 이방인

 

이 작품이 내게 미친 영향을 생각하니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뫼르소, 살인 사건을 읽으면서 수차례 읽었던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재미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겨우 열네 살에 나는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스토리만 보자면 어려울 것도 없고 쉽게 읽히지만 기실 쉬운 작품은 아니었음에도 작품의 의도에 근접했다. 나는 다소 뫼르소에게 이입이 되었던 듯하다. 여러 번의 재독 과정에서도 나는 부조리한 인물에 내 자신이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부조리란 희구하는 정신과 좌절시키는 세계 사이의 단절이다. 그 단절을 가운데 두고 인간과 세계는 평행적으로 존재한다. 화해보다는 그 자체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 작품의 기저에 내 정신은 희열을 느낀다.

 

문학동네 번역과 역자의 해설을 보면서 실소가 나오기도 했는데 역자 나름의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는 걸 알기에 함부로 비웃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실망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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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이방인],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카뮈의 이방인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뫼르소에게 살해당한 '아랍인'의 동생이 서술 화자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에서 뫼르소에게 살해당한 남자는 이름도 없이 그저 한 '아랍인'일 뿐이었다. 죽은 자와 그의 가족들에게도 이 세상은 뫼르소만큼이나 부조리한 곳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 속의 가장 큰 부조리는 화자가 복수심에 프랑스인을 죽이는 부분이다. 그 프랑스인에게 이름을 주었고 스토리를 주었으나 실은 살해의 대상이 된 그에게 화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한 '프랑스인'일 뿐이다. 알제리 혁명 시기에 일어난 화자의 살인은 혁명이 이루어진 날 새벽이라는 시간의 문제만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이방인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부조리하다. 화자 역시 뫼르소처럼 세상 일에 무심하며 사람에게 냉소적이다. 구경꾼들의 증오가 맹렬하길 바라는, 자신의 일조차도 거리를 두는 성향을 가진 화자. 뫼르소의 페르소나이다.

 

이방인의 문장과 기법을 차용하고 패러디하고 있는 이 작품은 또 다른 이방인이다. 그러나 이방인보다 잘 쓰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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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또 다른 욕망의 이야기

 

- 세 가지 이야기

 

이 작품집은 세 편의 중단편 분량 길이의 소설로 이루어져있다. 욕망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엮을 수 있지만 성경적 해석으로 한 데 묶는 해석에는 의문이 든다.

 

1. 순박한 마음

 

험한 인생을 살아온 펠리시테라는 하녀의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심리보다는 이야기의 흐름 그 자체만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사랑하고 돌볼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 헌신하는, 비운의 천사인 여성의 캐릭터를 표상화 한 점이 언뜻 '귀여운 여인'과도 겹쳐진다. 그러나 그 캐릭터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펠리시테가 성당과 미사에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저 캐릭터일 뿐이기 때문이다.

 

2.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실제 있는 전설을 각색한 듯 보인다. 서사는 전형적인 영웅담이며 운명에 귀속되고 마는 인물이 결국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영웅 치고 인물은 맹목적이고 구원을 받는 과정은 속죄의 방법임에도 감동이 없다. 운명대로 제 부모를 죽이는 장면에서 쥘리앵은 아내 탓을 한다. 돌아가 다시 읽어보았더니 작가는 아내가 쥘리앵이 운명대로 살도록 하기 위해 부모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설정을 해놓았다. 그러나 아내 침대에서 자고 있던 늙은 의문의 남성을 확인도 없이 죽여버리는 이야기는 고대 신화적 진행보다 나을 게 없어 보였다.

 

3. 헤로디아

 

성경의 이야기를 구체화하여 권력과 에로티즘을 그려냈다. 제목대로 여성이 주인공이다. 가장 사악하고 잔인한 존재.

 

욕망을 그려낸 작품인 마담 보바리에서 주인공이 여성이었던 점에 크게 불만을 갖지 않았으나 이 작가가 작품 속에 여성을 쓰는 방식은 구약성경보다 낫지 않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대단한 작품으로 칭송 받는 이유를 더 알고 싶다. 해설과 역자 후기만으로는 설득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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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삶과 죽음의 평행로

 

- 자살의 전설

 

이 작품집은 6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럼에도 크게 하나의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그럴 것이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인물을 조금씩 다르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과 하나씩 따로 보더라도 시간 흐름에 의한 전통적 플롯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들은 여러 자살을 다룬다. 또는 자살에 이르지 못하는 수많은 죽음(을 향해 가는 인물)을 다룬다. 절망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인물의 공통점은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조차 없는 인물들은 그저 주변 인물과의 관계와 자기 안의 감정만으로도 늘 고통에 허덕인다. 혹은 너무나 비겁하고 뻔뻔한데 그마저도 절망의 표현이다.

 

어떤 작품은 재미있고 어떤 작품은 지루하다. 이야기는 반복되고 작품마다의 인물이 변별력을 크게 갖고 있지도 않다.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죽음 외엔 방법이 없다는 건가.

 

다시 읽어야 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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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욕망과 반전으로 가득 찬 긴 이야기

 

- 세라 워터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 하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이기 때문이다. 감독이 원작을 어떻게 편집하여 재구성했을지가 궁금했다.

 

구성이나 문장, 문학적 완성도는 높지 않은 소설이다. 그러나 이야기성이 풍부해 끌려가게 된다. 즉 재미있고 가독력 있고 쉬운 소설이라는 얘기다. 머리 식힐 때 읽기 좋은데 분량이 너무 많은 게 흠이다.

 

워낙 길고 이야기가 많아 영화로 만들 때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본다. 감독은 이 소설의 딱 절반을 잘랐고 그 절반의 이야기에 대한 마무리는 스스로 결정하였다. 무해하게, 현재의 여러 관점들을 반영하여. 매우 영리하다. 궁극적으로 소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벗어나지도 않았다.

 

영화 자체는 그저 편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상업영화다. 그러나 서사 장르의 핵심인 구성을 보며 역시 박찬욱이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배경을 일본통치시대로 바꾸면서 원작의 기괴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살려낸 것도 매우 좋았다.

 

스타인벡의 '에덴이 동쪽'은 영화로 제작되며 더욱 유명해졌다. 원작을 워낙 좋아했던 나는 비디오를 빌려 봤다. 대체 그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담았을까. 절반을 잘라 뒷부분만 담았는데 실제 작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보다는 청춘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름다운 영화였지만 한계가 느껴졌다.

 

이런 스타일 소설을 굳이 또 찾아 읽진 않겠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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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고두-임현

 

의심하라, 모든 것을. 분명한 서사와 삶에 대한 혼란스러운 판단이 아주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 형식과 이기적 동기의 선함의 가치를 주장하는 화자는 위선자이면서 예의 바른 사람이고, 비겁하면서 겸손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가해자이다. 옳고 그름 사이에 존재하는, 사방으로 발산하는 무수한 많은 지점들에 대해 작가는 질문한다. 당신은 왜 의심하지 않느냐고.

 

눈으로 만든 사람-최은미

 

그렇게 시간이 지나 변할 수 있는 존재, 결국 부스러기들이나 남기는 존재일 뿐인가, 사람은. 고통의 확장 방식은 좀 진부하였으나 그 통증만큼은 생생히 전해졌다.

 

문상-김금희

 

무엇을 어느만큼 기억해야 하고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 걸까. 희극적인 방식, 비극적인 방식 모두 옳다고 여길 수는 없다. 그저 희극이고 비극이다. 김금희의 이 작품은 기대치에 못 미쳤다.

 

고요한 사건-백수린

 

 너무 익숙한 서사, 그러나 작가만의 색다른 시선. 아름다움 앞에 쉽게 뒤로 내팽개진 정의와 인정. 그에 관해 작가는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다. 그것은 독특함일까, 비겁함일까.

 

호수:다른 사람-강화길

 

매혹적이고 불명확한 소설이다. 모든 설정에는 이면이 있고 어떤 사실도 밝혀지지 않는다. 결말 역시 그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소설 안에서 명확한 건 하나다. 끊임없이 폭력을 당하고 살아온 여성의 역사이다. 작가는 비관으로만 끝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명확한 응징을 하자니 현실을 부정하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생각해도 무리 없는 결말은 이 작품을 더 오래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부제로 붙은 '다른 사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보이는 것과는 다른 사람? 모두 다른 사람이 겪은 폭력을 수렴하고 있는 호수?

 

그 여름-최은영

 

최은영의 소설은 따뜻하고 순하다. 특징인 동시에 어쩌면 극복해야 할 과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울컥하게 만드는 힘은 분명 단순한 서사성에만 있지 않다. 그러나 전형적인 사랑의 역학관계를 그린 이 소설은 뻔하고 조금 지루하다. 젠더적 차별성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환치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영화와도 겹친다. 사랑의 이야기는 너무 흔하므로 조금은 차별적인 서사를 담고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천희라

 

이 또한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다. 서사가 전형적이지 않아 재미 있는데 작가가 의도한 편지의 형식이 이 이야기를 가장 빛나게 하는 방식이었을까, 조금 의문이다. 어떤 불협화음, 말할 수 없는 진실, 조금만 듣고자 하는 마음, 결국 모든 이야기는 변형될 수밖에 없다는 참담함이 곳곳에 숨어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 '소설가 소설'을 배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매력이 덜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지나치게 힘을 주고 있다고 여겨지진 않았을 것이다. 문장을 단순화하는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재미도 있었고 매력도 있었지만 서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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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레이 브래드버리 단편선

 

- 상상보다 넓은 이야기들

 

SF소설을 순문학과 굳이 장르로 구분해야 하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 역시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간 읽었던 SF소설은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보다는 소재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었다. 문장이나 구성면에서 순문학보다 비중을 두지 않아서인지 나는 오히려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보완하면 그만일 문제이다. 더불어 SF와 알레고리의 명확한 구분이 쉽지 않은 문제 역시 내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단편집을 읽고 나는 어느 정도 답에 가까워진 듯하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번역된 문장을 읽고,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원 문장이 뛰어나지 않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인간의 희로애락이 매우 세련되게 나타난다는 점, 기발한 소재에 함몰되지 않은 주제의식, SF장르와 알레고리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놀랍도록 단단한 플롯까지. 굳이 이 작가에게 SF소설 작가라는 한계설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물론 소재주의적 SF소설에 비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소설은 아니다. 깊이가 있다는 뜻이다. 다른 SF소설과의 차이를 보자면 (물론 모든 작품이 그렇지는 않지만) 소재에 한계가 없음에도, 그 소재를 지독하게 쫓는 방식이 아니라는 거다. 아주 단순한 상상력만으로도 SF라는 장르가 될 수 있도록 만든 건 기본에 충실한 작가의 필력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의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반페미니즘적이다. 소설 속 주체가 되는 인물은 언제나 남성이고 여성은 그저 남성을 보조하는 인물로만 그려진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장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심지어 여성에 대한 시선으로 구사한 비유는 역겨울 정도이다. 그에게 인간의 디폴트는 남성일 뿐이라는 게 너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나는 그래도 비교적 좋은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왜냐하면 다른 작품을 또 읽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내 불편한 시선을 견뎌야 하겠지만 배울 게 많은 작가이다. 물론 마음이 쓰리다. 페미니즘적 태도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가의 문장을 아름답게 번역하느라 애쓴 번역가 역시 부부 사이의 경어와 반말의 문제에서 반페미니즘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한다 해도 작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닐 수 있다. 이런 점에 대해 나는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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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혁명하는 여자들

- 여성적 시선에서 보는 저 너머의 세상

 

페미니즘적 SF소설이라는 이 작품집의 설명은 매우 간결하고 정확하다. 다만 페미니즘이 무엇이냐, SF라는 장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로 들어간다면 매우 논란이 일 수 있는 설명이다. 다만 이런 분류로 작품집을 묶어냈다는 게, 빠른 세태 파악으로도 보일 수 있고, 작가로도 인물로도 수동적 역할에 그치거나 묻혔던 여성이 드러났다는 점에 주목이 될 수도 있다.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고 일일이 그 작품을 요약하고 평하는 건 너무 노고가 큰 일이라 생략하기로 한다. 작품마다의 여성주의적 시선에 모두 동의가 되는 것도 아니기에 그 작업을 본격으로 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소설집, 참 재밌다. 소설적 완성도가 부족하다고 여겨온 SF장르의 약진이 돋보인다. 특히 작품집 중 '늑대여자'라는 소설은 소재와 주제와 구성 모든 면에서 무척 빼어나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다만, 소설집을 읽는 내내 알레고리 설정과 SF장르가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는지(굳이 왜 구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혼란스러웠다. 읽기 힘든 작품도 있었고(소재에 과도하게 천착되어 소설적 구성과 진행에 헛점을 보임) 주제를 구현하는 데에 여전히 부족한 작품도 보였다.

 

그럼에도 누군가 SF소설을 권해달라 말하면 이 소설집을 권해줄 작정이다. 얼마 안 읽어본 나의 얕은 경험으로도 꽤 괜찮은 구성이 느껴졌다. 다만, 소설 속에서 페미니즘을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페미니즘적 시선의 소설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SF소설을 써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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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