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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와 실존의 절묘한 스토리텔링, 둔황

 -이노우에 야스시

 일본 작가가 쓴 중국 고전소설이다. 호기심이 생겼다. 둔황이라는 제목도 뭔가 그럴싸했다.

 한 인물(조행덕)의 행적을 통해 문화(불교 경전)가 어떻게 지켜지고 유실되는지를 그렸다. 이야기의 구성은 간단하다. 낮잠으로 시험을 놓친 조행덕이 우연히 보게 된 서하의 여인을 통해 서하란 나라와 서하문자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서하를 탐방하던 중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불교의 교리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애를 쓴다. 어렵게 지켜낸 경전은 게으른 관리들의 무관심으로 서역에 싼값에 팔려나가고 만다. 전형적인 고전 소설의 플롯이다.

 둔황이라는 지역은 중국과 서역이 무역을 하는 중간적 위치로 사막의 기후 등 매우 색다른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민족들이 인물로 설정되고 이야기는 스케일이 크다. 이것을 60년대의 일본 작가가 그려낸 것이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어땠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말한 재미란 현대소설로서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말밖에는. 인물들은 전형적이고 사건은 우연적이며 주인공이 가치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충동적이다. 사람의 이야기에 치밀하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무엇으로 덮을 수 있을지.

 두 번 다시 읽고 싶지 않은 류의 소설이었다. 어렵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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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지나간 시간은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이다. 독자들의 환호가 너무 클 때는 어쩐지 한 걸음 떨어져 있고 싶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여러 해 지나서 읽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그런 습성에 비해 서둘러 읽게 되었다. 제목이 주는 끌림이었다.

 기억을 잃고 흥신소에서 일하던 화자는 결국 자신의 과거를 찾아 나선다. 떠오르는 것들의 조각은 쉽게 맞춰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화자는 집요하게 자신의 과거를 찾아낸다.

 스토리가 어렵지는 않다. 특별한 기법이 사용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단숨에 읽어내리기엔 숨이 찼다. 주인공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어쩌면 나 자신의 과거를 더듬어 보느라 그랬던 것도 같다.

 주인공이 만나게 된, 자신과 관련이 있거나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과거란 무엇일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처럼 분명 존재하고 남아있는 것이지만 희미하고 매혹적인 건 아니다. 아프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 그렇게 사람이 길고도 긴 인생을 살아내고 나서 남은 건 희미한 기억 뿐.

 주인공이 왜 그렇게 국경을 넘어야 했는지(그는 남미 출신이었고 가짜 신분증을 갖고 있었다) 시원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담담하게 되짚어가는 과정 속에 녹아 든 인간과 인생에 관한 고찰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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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불륜, 그것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

 - 단순한 열정(아니 에르노), 슬픈 짐승(모니카 마론)

 사랑에 빠진 여인, 집요하고 분열적인 감정을 심리묘사에 치중하여 그려냈다. 온전히 소유할 수 없는 남자에 대한 불안과 욕심을 엿볼 수 있다. 작가가 자전소설만 쓴다는 점으로 보아 솔직한 심경을 담은 것이리라. 작가는 거리낌 없이 쓴다. 용감하다.

 딱히 스토리가 없는 소설이어서 재미는 없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류의 재미는 있다.

 그러나 나는 불륜소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로맨스감성 자체가 무딘 편이라 크게 공감이 되지도 않는다. 그저 엿보는 것이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 그래서 작품보다는 작가에게 더 흥미가 생겼다.

 하층민 출신으로 자영업자가 된 부모. 경제적으로 큰 곤란은 없었으나 하층민 출신의 태생적 정서와 태도를 가지고 있다. 작가가 그에 무한한 열등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작가는 노력으로 중산층에 편입하였으나 중산층 특유의 위선과 가식을 알게 된다. 작가가 느꼈을 절망과 혼란이 짐작이 간다. 작가는 결국 인간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이해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이 작가가 글을 쓰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불어 최근에 읽었던 또 다른 불륜소설인 '슬픈 짐승'이 떠올랐다. 우연이겠지만 설정이 비슷하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집요하고도 모순된 감정이 그려진 소설이다. '단순한 열정'에 비해 소설적 플롯을 가지고 있으며 스토리 상의 반전도 제법 충격적이다. 이성이 통제하지 못하는 욕망 앞에서 모든 걸 파괴해버리고 자신마저도 파괴한 채 살아가는 여인의 이야기다. 극적이어서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굳이 두 권 중에 추천하라면 이 작품으로 하겠다.

 나도 불륜소설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을 슬며시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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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늙은 작가는 아름다운 소녀를 어떻게 그려내었는가

 -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오에 겐자부로

 

1. 서장 : 뭐야, 자네는 이런 곳에 있었나?

 작가는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여 자전소설의 형식으로 시작한다. 흔들림 없을 줄 알았던 노년의 혼란과 고통을 겪는 와중 화자는 세월을 건너 뛴 인물을, 고모리를 만난다. 물론 고모리는 과거 그대로가 아니다. 마치 소년을 연기하는 노인 같은 고모리. 젊음과 늙음의 묘한 공존이다.

 2. 제1장 : 미하엘 콜하스 계획

 30년 전 작가와 고모리, 그리고 전쟁시 미국인에게 입양되어 배우 생활을 했던 사쿠라와 함께 기획했던 '미하엘 콜하스'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작가에게 생생하게 그려진다. 영화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웅담이다. 과거의 김지하 시인이 언급된다는 점에서 내겐 개인적으로 환기가 강하게 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었다. 훗날의 김지하는 언급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내 자신의 기억을 통해 매우 주관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3. 제2장 : 연극으로 혼혈을 위무하다

 일본을 점령했던 연합군(미국군 위주)에 대한 기억. 명분에 관계 없이 승자들의 폭력이 무참하게 자행되었으나 일본에서는 마땅한 저항이 없었다는 사실을 회고한다. 빼앗기고 짓밟힌 작고 어린 영혼들에 대한 부채감이 잘 드러났다. 그것을 영화의 '메이스케 어머니'라는 여성을 통해 이루고자 한다. 더불어 작가는 사쿠라가 어린 시절 찍었던 영화를 떠올린다. 무언가 있을 거라는 암시, 작가의 강박, 그러나 더는 말하지 않는다.

 4. 제4장 : "애너벨 리 영화" 무삭제판

 "미하엘 콜하스" 영화 촬영이 진행되면서 소녀들에 대한 성 관련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의 욕망은 대상이 소녀라 하여 더 인간적이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영화를 접어야 할 때 사쿠라는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유가 뭘까. 이유는 영화를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 고모리가 사쿠라에게 보여 준 "애너벨 리" 무삭제판에서 드러난다. 점령군의 성적 노리개였던 소녀 사쿠라. 그 진실을 기억 너머에 숨겨뒀던 사쿠라에게 충격을 주기 위함이다. 즉 사쿠라는 자기 자신을 위무하기 위해 영화에 몰입했던 것이다. 그 위무가 비단 사쿠라 한 사람만을 위한 건 아니다.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고통은 작가 어머니가 펼치는 연극을 통해 재현되고 있었다. 그것을 직시하는 과정이 작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5. 종장 : 달빛을 보면/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고/빛나는 별을 보면/애저벨 리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보네

 30년 후 다시 만난 그들은 완성하지 못했던 영화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시간의 흐름을 통해 그들은 고통까지도 스스로 품어낸다. 그 자신을 완성하는 과정, 그것이 영화이고 또 문학이라는 메시지. 평생을 문학에 몸 담았던 겐자부로 자신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소녀는 아름답다. 그러나 고통스럽다. 주제에서부터 다른 롤리타 류의 소설이 떠오른 이유가 뭘까. 작가는 작고 어린 여자를 대상으로만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욕망 안에 담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런 시선, 여성인 내게는 작까의 그릇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약간 지루하긴 했으나 아름다운 소설이다. 그리고 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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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작가를 들여다보다, 혀끝의 남자, 백민석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란 작품집을 통해 백민석은 내겐 인상적이고 놀라운 작가로 기억되고 있었다. 딱 그 정도였다. 우연히 그가 신작소설집을 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무려 1년도 더 지난 시점이었다. 소설집 안의 신작은 두 편뿐이었다. 괜찮았다. 다른 작품 역시 읽지 않은 것이었다.

 1. 혀끝의 남자

 인도 장기체류자들의 이야기이다. 당연히 배경은 인도이다. 작가는 왜 굳이 인도를 배경으로 해야 했을까.

 소설 속 인도는 혼란과 질병과 난립하는 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 차별과 가난과 불신이 그득하다. 그것이 인도를 현실적으로 담아내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신에 대해 질문하고 있으므로.

 힌두교의 영향으로 어느 곳보다 신의 수가 많기도 한 인도. 인도인들은 신을기반으로 한 삶을 살고 있으나 앞에서 서술한 바대로 신의 은총이 내렸다고 보긴 어려운 점이 많다. 작가는 묻는다. 신은 어떻게, 왜, 존재하느냐고.

 매우 독특한 분위기였고 내겐 좀 어려운 소설이었다.

 2. 폭력의 기원(작은절골에서)

 빈민촌 아이들이 죄책감없이 폭력을 학습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러나 단지 빈민촌이기 때문이 아니다.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부자가 빈자에 대한 폭력은 더욱 빈번하다.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 그것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폭력은 학습되고 전염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폭력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기만 할 뿐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진 않은 듯하다.

 3. 연옥 일기(신릴한 돼지피가수스 Pigasus 혹은 아직 규정되지 않은 세계에서)

 알레고리 소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 떨어진 이들은 기술자들, 즉 메시아를 기다린다. 그곳은 세상의 무수한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가 실패한 공간이다. 이 공간을 설명하는 연옥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미래가 지옥일지 천국일지 모르는 이들의 겪는 혼란의 세계, 그러니까 바로 현실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 지옥 같은 혼란 속에서 아름답지 못한 천국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난 어떤 절망이 깊숙하게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작가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인데다 분석하기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4.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

 오피스레이디의 매매춘을 알선하는 신데렐레 책방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어쩌면 작가는 현대인들이 지식을 활용하는 방식을 매매춘에 빗댄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건 그들은 구조적 해결 방법은 알지 못한 채 도덕적 층위와 현실적 적응의 문제만을 고민하며 산다.

 5. 일천구백팔십 년대식 바리케이드

 산책로에서 시간을 역행하여 재현되는 과거는 누구나가 알 만한, 그러나 과거가 되어버린 투쟁과 저항의 한 단면이다. 작가는 과거에 매여있는 게 아니라 현재를 고민한다. 고민과 함성과 바리케이드는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확산은 빠르나 소리는 작다. 그러나 작은 소리가 모여서 지르는 게 함성이고 작은 목숨이 모여서 만드는 게 바리케이드가 아닌가. 작가의 현재적 고민이 반가웠다.

6. 재채기

 보이지 않는 계급, 보이지 않는다 하여 결코 넘나들기 쉽지 않은 계급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른 계급에 대한 이물감을 재채기로 표현하였다.

 7.  항구적이며 정당하고 포괄적인 평화

 엽편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다. 어쩌면 작가에게 글쓰기란 목적 없는 기다림인지도 모르겠다.

 8. 시속 팔백 킬로미터

 이 역시 자전적 내요을 담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작가가 글을 버렸을 때의 심경을 엿볼 수 있었다.

 9.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

 더 이상 과거형의 문장만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 작가는 그것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상으로 인정한다.

 

 해설을 읽고 나서 백민석 작가에게 한걸음 다가선 기분이 들었다. 그 개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그가 왜 그렇게 무겁고 어두운 소설을 쓰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더불어 내가 왜 이 작가를 좋아하는지도. 동질감이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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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처음 접한 제발트, 이민자들.

요란하고 떠들썩한 환호를 받는 작가에게는 성큼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제서야 제발트를 읽게 된 이유다.

 네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이민자들을 다루고 있다. 전쟁에 의해, 즉 나치즘에 의해 비자발적 이민자가 되어야 했던 유태인들, 그들을 독일인인 제발트가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제발트는 그들의 행적을 좇으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다시 재구성한다. 괴롭고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외면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삽입된 사진을 통해 실화임을 알 수 있지만 제발트의 문장으로 다시 태어난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사실만 담아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고통만큼은 실재하는 것 이상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네 편의 인물과 이야기가 다르지만 굳이 분리할 필요성을 나는 느끼지 못한다. 오래 전부터 이민자로 살아왔던 유태인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과 지역을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고 살아갔을 것이고 그것이 완전히 부서저버린 어느 날부터 유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크게 깨달아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자부심이 아닌 고통으로 다가와야 하는 불합리한 이유에 대해 조금도 납득하지 못한 채. 인물 중에는 일부만 유태인인 사람도 나온다. 유태인이라면 가장 끔찍한 낙인을 피해갈 수 없었던 시절, 그 자신의 혼란은 자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1. 헨리 쎌윈 박사-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지 않는가

 2. 파울 베라이터-어떤 눈으로도 헤칠 수 없는 안개무리가 있다

 3. 암브로스 아델바르트-내 밀밭은 눈물의 수확이었을 뿐

 4. 막스 페르버-날이 어둑해지면 그들이 와서 삶을 찾는다

 소제목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작품 속 인물의 구체적 고통을 다시 언급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다만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들여다 볼 용기가 있는지,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다. 부당해고로 직장과 가족을 잃고 높은 곳에서 농성을 잇고 있는 이들 역시 또 하나의 이민자들이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딱히 재미 있는 소설은 아니었고 나쁘지 않았으나 드물게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거슬렸다.

 해설 중 나온 문장으로 이 작품평을 끝내고자 한다.

 "추구를 위해 고향을 떠난 사람ㅇ게 고향은 긍정적인 것으로 남기 쉽고, 회피를 위해 고향을 떠난 사람에게 고향은 부정적인 것으로 남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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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김영하 소설집을 읽다

 

김영하를 특별히 좋아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김영하를 읽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속에 답답함과 우울이 차오를 때이다. 도서정가제 시행 전 사둔 책을 집어들고 목차를 살폈다. 이런, 읽은 작품이 반이었다.

 총 9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을 기어코 다 읽은 건 사실 본전 생각 때문이었다. '비상구' 같은 경우는 몇 번을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잘했다는 생각. 다시 읽고 또 읽어도 좋은 작품은 좋다는 결론, 그리고 전에 보지 못한 것을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발견하게 된다는 결론.

 1.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서로를 의심할 뿐 무관심하기 그지 없는 현대인들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무언가 달라질 기미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작품집 전체에 깔린 허무주의의 시작이었다. 다만 사건의 우연성이 지나친 듯하여 아쉬웠다.

 2. 사진관 살인사건

 사실이 아닌 진실에 관한 알리바이라는 건 애초에 성립이 가능한 걸까? 살인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이 내놓는 진실과 이면은 그 무엇이 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혼동 자체를 보여준다. 더불어 자의적 진실과 사실 사이의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음도.

그들처럼 인간은 대체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하겠지.

3. 흡혈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다름에 대한 이해나 수긍보다는 차라리 다른 종족임을 더 믿고 싶어할 정도로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 이 또한 허무하지 아니한가.

 4. 피뢰침

 벼락을 맞고 다시 벼락을 맞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집단 광신도들을 닮아 있다. 공포를 통해 얻는 오르가즘은 궁극적으로 공포를 잊기 위한 것. 일종의 마조히즘.

 5. 비상구

 섣부르고 경박하고 폭력적인, 모텔의 창문을 깨는 것 말고는 다른 출구가 없는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언제나 현재진형형인 일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6. 고압선

 돈 외에는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비루한 가장의 이야기. 존재감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러나 작중 화자 스스로도 자처한 일이 아닐까. 안전한 삶만을 추구했으니.

 7. 당신의 나무

 화자에게 나무의 생존력은 공포다. 그악스럽게 다른 존재를 해치면서까지 뻗어나가는 뿌리들, 그것이 나무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을 터. 작품에서는 나비효과에 대해 언급한다. 원인과 파장과 결과라는 것은 자의적이며 상호 관계임을 말한다. 사람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나무와 부처의 관계에서 화자는 또 다시 진저리친다. 나무가 부처상을 휘감아 부순다. 그러나 그는 승려에게 부처상이 나무의 갈 길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살아가면서 내내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8. 바람이 분다.

 인터넷게임 상황과 남녀의 상황을 절묘하게 교차시킨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묘사는 흔하긴 하지만 잘하긴 어려우므로. 어쨌건 이 작품에선 미래의 자유를 위해 현재의 구속을 감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래의 자유란 오지 않을 여자. 그러나 오기를 바라는 여자. 그것은 희망일까 정말일까. 나는 답을 못 내리겠다.

 9.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잃어버린 소리를 찾다가 세계 폐허 기행을 가게 된 남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을 내내 찾아다녀야 하는 남자는 여행도중 한 여자를 만난다. 작품 말미에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잃어버린, 혹은 거울 속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여성성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니마인가? 이 작품에서는 딱히 그래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이 남자차 궁극적으로 찾으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최근 백민석 소설집을 읽어서인지 김영하 작품들이 더 가볍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이 김영하의 매력임을 잊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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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