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 최은영, 문학동네 내가 읽은 책2016. 8. 18. 17:53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소설집
1. 쇼코의 미소
쇼코와 소유. 이들의 이야기는 특별할 것이 없다. 이 소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뭔지 한참 고민했다. 상처를 대하는 방식 때문일까. 숨기지 못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 때문일까. 타인의 상처에 진심으로 닿기 위해서는 먼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즉 그만큼의 애정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결론 때문일까. 쇼코와 소유의 상처를 품어주는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도 따뜻했다. 쇼코 가정사를 가학적으로 상상해버렸다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다.
2. 씬짜오, 씬짜오
정당함과 개인의 상처는 별개의 문제임을. 베트남과 이 나라와의 관계를 두 가족 이야기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개인의 상처에 도달한다. 상처 입은 자가 먼저 상처 입힌 자(이 도식은 부정확하다)를 감싸주고 이해해주는 관계, 그러나 자신들의 상처 이상의 세계를 구현하기는 어려우 관계. 아픈 소설이었다.
3.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시국사건이 소재이지만 초점은 인간의 고통과 관계에 맞춰져 있다. 시대를 통한 불행 모두를 관통당한 순애, 그 순애를 사랑하는만큼 그의 고통에 다가서는 걸 두려워하는 혜옥. 타인의 상처를 가까이서 들여다 본다는 건 그 고통이 전이되는 것마저도 각오해야 되는 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혜옥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있는 작가는 인간에 대한 고민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4. 한지와 영주
낯선 곳에서 만난 두 이방인, 한지와 영주. 현실의 고통에서 잠시 피하러 온 곳에서 두 사람은 규정되지 않은 애정을 느낀다. 그러나 삶에 대한 의무에서 그들이 벗어날 방법은 없다. 야생의 습성을 간직한 채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동물이지 인간이 아니다. 사회화라는 건 대부분의 인간에게 생존의 필수 요소이지만 어떤 인간에게는 그저 고통이다. 두 사람이 마음에 들어온 상대를 밀어내는 방식은 달랐다. 떠나기 위해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을 감내하는 한지를 영주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독자는 이해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조금 울었다.
5. 먼 곳에서 온 노래
아마도 작가 자신의 스토리가 어느 부분에든 들어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시대의 고통에 맞서 저항하던 방식은 시대가 달라지면서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그런 고통을 함께 노래하며 공감하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다. 소설은 그런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의 고민들이 너무 직접적으로 그려졌다는 건 작가가 거리두기를 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자전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고통의 시간을 건넌 후에는 또 다른 사랑이 있고 관계가 있다.
6. 미카엘라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학생의 세례명이 미카엘라였나 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화자를 미카엘라로 설정한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지난한 삶을 살아왔지만 언제나 현재형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녀의 엄마, 세월호 유족 부모의 마음을 그렇게 비추고 싶었나 보다. 지는 싸움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를 위해 나약했으나 곧았던 아빠를 이물로 설정했나 보다. 결말을 미리 만들어두고 여러 길을 돌아봤을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프다, 이 소설.
7. 비밀
할머니는 지민의 죽음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죽어간다는 걸 안다. 지민의 죽음으로 살아났던 몸이 다시 죽어간다. 그렇게 손녀인 지민의 곁으로 자신의 몸이 가고 있다는 걸 할머니는 모른다. 손녀는 기간제 교사였던 세월호 유족을 모델로 했다. 너무 아파서 읽기가 힘들었다. 세월호는 많은 이들에게 이토록 큰 트라우마다. 세월호 유족 중 학생 외의 인물을 그렸다는 게 고마웠다. 어느 죽음인들 아프지 않을까. 세월호 사건을 다룬 앞의 소설과 이 소설은 비교적 구성이 단순하고 명확하다. 분석을 하기엔 감정이 앞서버려 더 이상은 못하겠다.
첫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 작가가 좋아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소설을 읽기도 전에 이 작가가 좋아져버렸다. 워낙 잘 안 우는 사람이 소설집을 읽으며 세 번이나 울었다. 순하고 선한 서사 안에 인간의 고통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깔려 있었다. 최근 젊은 작가 소설이 영 내게는 채워지지 않는다 여겼는데, 워낙 센 서사 취향임에도 이렇게 순하고 선하고 기교 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너무 좋아져서, 나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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