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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기록

 

-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콜롬비아 문학이라면 마르께스로 친숙한 듯하지만 그 이외의 작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남미 문학을 읽었을 때 특정 국가에 관계없이 서술이 장황하고 문학적 기교가 세련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은 비교적 덜한 편이나 현대소설의 미덕의 관점(편협할 수도 있는)으로만 보자면 지루하다.

 

마약이 세상에 뿌려놓는 공포는 단순히 중독에 그치지 않는다. 불법적인 거래, 그로 인한 폭력, 조직적 움직임, 이권을 위한 테러.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이 모든 것의 총체다. 마약조직의 수장이 엄청난 부지를 마련해 사설 동물원을 만들 수 있는 나라다. 자신들을 옭죄는 정치가를 테러하는 나라다. 사람을 함부로 쓰고 버리는 데 익숙한 나라다. 마약조직 수장의 화려한 시절은 가고 사설 동물원은 황폐해진다. 그렇게 한 때의 부귀영화가 사라지는 것은 그 안에 살던 동물들에게는 어쩌면 생존의 커다란 위협이다. 마약으로 삶을 일구던 이들은 그로 인해 죽거나 죽임 당하거나 버려진다. 그 동물들과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직접 종사자들 외에 그들의 가족이나 이웃들은 사람을 잃는 상처, 이유 없는 테러를 당해야 하는 불운, 내재된 공포와 늘 마주쳐야 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화자인 안토니오는 그저 운이 없어 테러를 당하게 되는데 그런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며 외상 후 스트레스를 떠안고 산다. 그렇듯 폭력이 만연해있는 사회지만 그를 이해하고 그와 공감하는 건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뿐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안토니오의 절박한 심정을 설득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만 설득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안토니오의 말이 내내 변명처럼 들렸던 게 소설을 지루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심리묘사가 아쉬웠다는 뜻이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미국에서 조직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러 온 이(그링거)들 조차도 그런 폭력에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폭력 안에 스스로 소속되기까지 한다. 그저 눈을 감는 것으로 스스로 폭력의 가해자의 늪에 빠지지 않은 것만을 위로로 삼기도 한다.

 

그런 류의 폭력이 아님에도 모든 사고가 폭력으로 다가오는 사회에서 개인 사이의 감정의 연대는 미약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무리 공감을 기반하고 있다 하더라도. 해설에서 인간의 사랑이 어쩌고 나오는데 궁극적으로 그렇게 볼 만한 지점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그저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자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희망 같은 건 너무 쉽게 부셔졌는데 그 정도 희망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기반으로 여긴다면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추락하는 것들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소음을 남긴다는 제목만큼은 대단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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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