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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겪은 전쟁, 여성들이 말하는 전쟁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제2차대전, 독일과 소련의 전쟁에서 전쟁을 겪은 당시의 소련(벨라루스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다.

 

왜 여성들의 이야기만을 담았을까. 읽기 전부터 내가 아는 방식의 전쟁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짐작은 내가 여성이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남성들은 전쟁을 이야기할 때 "평범한 온기를 차디찬 광채와 바꾸려는 욕망" 때문에 주로 개인이 사라진 영웅담을 그리거나 타인에게서 들은 정황을 종합하여 거대서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여성들은 전쟁을 겪은 순수한 '개인'을 이야기할 줄 안다. 그러한 여성의 전쟁은 너무 쉽게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전제되어야 할 것은, 당시는 현재보다 남녀 성역할이 더욱 뚜렷이 구분되어지던 시기였다. 그것이 하나의 가치와 미덕이 되는(현재에도 여전히 그런 시선이 있지만 주로 남성이나 명예남성들에 의해 주도되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달라졌다) 시기였고 여성들 스스로도 그에 저항감이 없었다. 더불어 소련은 스탈린 치하의 공산주의 사회였다. 이미 판명되었지만 스탈린은 공산주의를 참칭하여 또 다른 형태의 독재를 했던 자이다.

 

이 책은 내내 전쟁을 겪은 여성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장에서도 삶이 있고 군인들도 감정이 있다. 그들에게는 전쟁이 삶이고 전쟁터가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을 읽다보면 그들 하나하나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개별성과 공통성이 명확히 있다는 뜻이다. 전쟁을 치르다 보게 된 꽃의 아름다움, 여성으로서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같은 여성들과 혹은 남성들과 공유하던 전우애, 여성이 배려받지 못하여 생긴 고통(생리대가 없다거나 군복 미지급, 혹은 너무 큰 군화, 전장에서의 임신 등)들도 다양하다. 쉽게 말하려 들지 않지만 여성이 드문 전장에서 여군들은 남성들에게 성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혹은 반대로 보호의 대상이 되어 부녀 같은 관계, 혹은 연인이 되기도 한다.

 

전쟁은 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배제해 왔을까. 남성들의 것이어야 할 전쟁의 색체에 여성들의 색이 덧입혀지는 걸 남성들은 왜 두려워할까. 그것은 남성우월주의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은 여성들이 말하는 진짜 전쟁(진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알고 보면 전쟁에서 이렇게 사소한 일을 겪고 사소한 감정을 가졌노라 말하는 것이 남성성에 해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남성에 비해 적었지만 명백히 전쟁에 참여했던 많은 여성들이 (이 경우만 아니라) 항상 없었던 존재가 되었던 이유에 대해 작가는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전장에서만 전쟁을 겪은 게 아니었다. 남겨져 식솔을 돌보고 전장에서 돌아온 가족을 돌보는 일조차 분명히 전쟁이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전쟁에서 돌아온 여성들에 대한 대우였다. 남자들이나 할 (못할)짓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들은 비난 받고 소외된다. 전쟁에서 치르는 각종 험한 일이 여자의  몫이 아니라는 깊은 차별주의가 실제 존재하고 있는 여성군인의 존재마저 지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환향녀' 취급을 받기까지 한다.

 

한국전쟁에서의  여성들 역시 지워져있다. 아직도 수면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들의 존재. 이 책의 서술자들처럼 그들은 그 모든  진실을 가슴에 품고 자신들을 잊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그 진실을 마주해줄 사람을 찾고 있지 않을까.

 

여성을 주제로 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나라의 책에서나 공감이 어렵지 않다. 겪은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도 세계는, 문학은, 아주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작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야기를 꾸미고 바꾸고 새로 배치하고 재미있고 흥미있고 감동적으로, 이런 일련의 과정이 그녀들의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으리라.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지만 잘 읽혔다. 그리고 한 번쯤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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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