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 - 레비 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한길사 내가 읽은 책2016. 7. 4. 23:37
슬픈 열대
- 어느 민속학자의 원주민 들여다보기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오랫동안 책장에 방치해 둔 책이었다. 두께와 한길사라는 무게감에 짓눌렸던 듯하다. 막상 여행기에 가까운 책이었다. 물론 평범한 여행기는 아니다. 원시성을 간직한 브라질의 원시부족 네 개에 대한 관찰기가 이 책에선 가장 유효하기 때문이다.
나는 레비 스트로스도, 구조주의도 알지 못했다. 책의 서문에 나온 철학자로서의 레비 스트로스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구조주의에 대한 설명이 너무 간단해서인지, 아니면 레비 스트로스의 철학 자체가 빈곤했던 것인지, 그마저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서문에서조차 레비 스트로스의 사상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심도 있는 설명이 부족했다.
여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내내 지루하게 책장을 넘기다 5~8장까지, 즉 원주민 네 부족에 대한 특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한 부분에서는 특별한 흥미를 느꼈다. 방송에서 원시부족 관찰 다큐는 이제 흔하다. 다만 그 작위성에 대한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보고자 하는 대로 보기 위해, 혹은 보여주고 싶은 대로 보여주기 위해 조작하는 다큐멘터리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에 반해 이 책의 관찰기는(이 역시 내 자의적 판단이지만) 실제에 입각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민속학자 역시 보고 싶은대로 봤다는 혐의를 지울 수는 없다. 더 원시적인 부족 내의 어떤 질서. 문명화 된 서구인의 입장에서는 야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 나름의 민주주의와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원시성에 더 가까운 부족을 더 자연에 가까운 순수로 보고 문명에 가까워진 부족에 대해 야만성이 더 드러나는 것으로 단순 이원화 한 데서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불합리한 구조주의에 무게를 실으려 든 것 같다.
이슬람, 불교, 기독교에 대한 이 민속학자의 입장은 더욱 명확하다. 인도의 이슬람이 주고 있는 불합리와 불편에 대해 후발종교로서의 억척스러움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시작이라는 것 자체가 임의로 결정할 수 있지 않을 텐데 레비는 이슬람의 출현을 무하메드로부터 삼고 있으며 서구인들이 흔히 하는 비난으로 무하메드를 깎아내린다.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억압하는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일반화 하는 점에서 레비는 철학자로서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다행히 이 책을 재미 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원시부족에 대한 관찰부분이 나의 글쓰기에 모티베이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단지 글에 이용한다기보다는 내가 이전에 썼다 묻어둔 작품의 소재였고 내가 흥미로워하는 소재였다.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재미는 취향에 따라 매우 다를 것 같다. 여행기 좋아하는 분들에겐 신선할 것도 같고. 추천은 못하겠다.
문득 떠올랐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아메리카 인디언이 학살 당한 과정을 그린 책이다. 무거우면서도 잘 읽혔다. 물론 슬픈 열대와는 전연 다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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