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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 단편선

 

- 상상보다 넓은 이야기들

 

SF소설을 순문학과 굳이 장르로 구분해야 하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 역시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간 읽었던 SF소설은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보다는 소재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었다. 문장이나 구성면에서 순문학보다 비중을 두지 않아서인지 나는 오히려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보완하면 그만일 문제이다. 더불어 SF와 알레고리의 명확한 구분이 쉽지 않은 문제 역시 내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단편집을 읽고 나는 어느 정도 답에 가까워진 듯하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번역된 문장을 읽고,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원 문장이 뛰어나지 않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인간의 희로애락이 매우 세련되게 나타난다는 점, 기발한 소재에 함몰되지 않은 주제의식, SF장르와 알레고리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놀랍도록 단단한 플롯까지. 굳이 이 작가에게 SF소설 작가라는 한계설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물론 소재주의적 SF소설에 비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소설은 아니다. 깊이가 있다는 뜻이다. 다른 SF소설과의 차이를 보자면 (물론 모든 작품이 그렇지는 않지만) 소재에 한계가 없음에도, 그 소재를 지독하게 쫓는 방식이 아니라는 거다. 아주 단순한 상상력만으로도 SF라는 장르가 될 수 있도록 만든 건 기본에 충실한 작가의 필력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의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반페미니즘적이다. 소설 속 주체가 되는 인물은 언제나 남성이고 여성은 그저 남성을 보조하는 인물로만 그려진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장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심지어 여성에 대한 시선으로 구사한 비유는 역겨울 정도이다. 그에게 인간의 디폴트는 남성일 뿐이라는 게 너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나는 그래도 비교적 좋은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왜냐하면 다른 작품을 또 읽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내 불편한 시선을 견뎌야 하겠지만 배울 게 많은 작가이다. 물론 마음이 쓰리다. 페미니즘적 태도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가의 문장을 아름답게 번역하느라 애쓴 번역가 역시 부부 사이의 경어와 반말의 문제에서 반페미니즘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한다 해도 작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닐 수 있다. 이런 점에 대해 나는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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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