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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신해혁명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신해혁명

중국 최초의 정당인 중국혁명동맹회는 탄생 이듬해인 1906년부터 청조 타도를 목표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대중적 기반이 약하고 해외에서 무장 세력을 들여와 봉기를 일으켜야 한다는 한계 때문에 봉기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에 중국혁명동맹회 내에서는 봉기군의 중심을 비밀결사에서 신군으로 옮기고 투쟁 지역도 양쯔 강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신군은 위안스카이가 새로 편성한 신식 육군으로, 청 조정의 신정에 따라 과거제가 폐지되자 많은 젊은이들이 입대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쑨원의 혁명 사상에 동조하는 이가 많았다. 1908년 10월, 안후이성에서는 혁명 단체 악왕회가 신군과 함께 광서제와 서태후의 죽음을 계기로 '안후이 신군 봉기'를 일으켰고, 1910년 2월에는 광둥성의 신군이 '경술 신군 봉기'를 일으켰다. 이 외에도 약 10년 동안 곳곳에서 혁명 단체들의 무장봉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혁명 단체의 무장봉기는 탄약이 부족한 데다 더 많은 신군의 협력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모두 실패했다. 특히 1911년 4월에 자금 및 무기 부족, 계획 누설 등의 이유로 실패한 황허 강 봉기는 중국혁명동맹회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한편 당시 혁명 단체들의 산발적인 무장봉기는 청 조정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1901년부터 청 조정은 신정을 실시해 개혁을 추진했지만,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무장봉기 때문에 개혁에 전력할 수 없었다. 비록 혁명 단체들의 무장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더 많은 신군에게 혁명 사상이 유포되었다.

 

1911년 5월, 청 조정은 철도 국유화를 발표하고 열강에게 차관을 빌려 재정난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1905년 이래 청 조정은 신정을 펼쳤으며, 근대적 상공업을 운영한 입헌파 신사들이 적극적으로 이권 회수 운동을 펼쳐 광산 채굴권과 철도 부설권 등을 열강에게 회수했다. 또한 후베이성, 후난성, 광둥성 등의 철도 건설을 위해 민간 자본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본은 쉽게 모이지 않았고,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던 청 조정은 철도 건설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청 조정은 열강에게 차관을 빌려 철도를 건설하고자 했다. 1908년, 광서제와 서태후가 세상을 뜬 후 섭정을 맡은 순친왕은 내각을 황족 중심으로 개편하고, 철도 국유화를 발표했다. 청 조정은 철도를 민영으로 건설할 경우 오랜 건설 기간과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국유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는 철도가 안정적인 재정 수입원이 될 것이라는 청 조정의 이해와 철도가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투자 대상이라는 열강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청 조정의 철도 국유화 정책으로 입헌파 신사층과 민중 사이에서 반청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철도 국유화 반대 운동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이들이 보기에 청 조정의 철도 국유화 정책은 개혁에 역행하고, 열강에게 다시 철도 이권을 내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철도 국유화를 반대하는 보로(保路) 운동은 후난성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후베이성, 광둥성까지 이어졌다. 특히 쓰촨성에서는 '쓰촨보로 동지회'를 중심으로 철도 국유화를 반대했다. 청 조정이 이 운동에 강경하게 대응하자 보로 운동은 점차 반청 운동의 성격을 가졌다. 급기야 보로 운동이 무장 투쟁으로 발전하여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기에 이르자 청 조정은 최후 수단으로 호북신군을 파병했다.

 

그리고 드디어 신군의 혁명 사상에 쓰촨성 보로 운동이 더해져 혁명의 거센 파도를 만들었다. 이것이 우창(武昌) 봉기이다. 우창 봉기는 1911년 10월 10일 혁명 단체가 일으킨 무장봉기로, 청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 후베이성에서는 문학사(文學社)와 공진회(共進會) 등의 혁명파 세력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혁명 세력을 결집하면서 신군 내에 혁명 사상을 전파했다. 청 조정이 쓰촨성 보로 운동 진압을 위해 군대를 파견하자 당시 우창에는 소수의 신군만 남았다.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문학사와 공진회는 추석에 봉기하기로 하고 철저한 준비를 거쳐 결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창 봉기는 이들의 계획과 상관없이 뜻밖의 사고로 황급히 일어났다.

 

1911년 10월 9일, 한커우 러시아 조계지에서 혁명군들이 폭탄을 제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한 혁명군의 담뱃불이 화약이 있는 곳에 떨어져 화약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봉기에 관한 계획이 모두 들통 나고 말았다. 이로써 봉기를 위한 깃발, 공문서, 명단이 압수되고 관련자들이 체포되자, 우창의 혁명당과 신군은 봉기를 앞당겼다.

 

혁명군은 삼엄한 경계를 뚫고 10월 10일 저녁에 우창대의 무기고 공격을 시작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우창성 밖은 제21 혼성여단의 제11영이, 성안에서는 제29표가 혁명군에 호응함으로써 혁명군은 무기고를 쉽게 탈취했다. 혁명군은 사산 지역의 초망대에 집결했지만, 사전 준비나 계획이 미흡하여 작전을 펼칠 지휘관이 마땅히 없는 상태였다. 혁명당은 하는 수 없이 오조린을 임시로 선출한 후 총독아문으로 진격했다. 총독아문으로 진격할 때 혁명군은 2천여 명으로 세가 늘어나 있었으며, 오조린의 형인 오조기가 가담함으로써 더욱 확장되었다. 혁명군이 총독아문으로 진격해 온다는 소식에 놀란 호광총독 서징은 혁명군에 대응조차 하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밤새 총독아문을 공격한 혁명군은 10월 11일에 총독아문을 점령하고 우창을 함락시켜 호북군 정부를 수립했다. 그리고 혁명군은 12일에 한양과 한커우까지 점령하여 우한삼진(武漢三鎭)을 모두 확보했다.

 

우창 봉기의 성공으로 호북군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혁명 전의 폭발 사고로 혁명군은 지휘부를 잃었다. 때문에 군정부의 도독 선출에 문제가 생겼다. 또한 중국혁명동맹회의 주요 지도자인 쑨원, 황싱 등이 모두 그곳에 없던 것도 원인이었다. 따라서 혁명군은 억지로 리위안훙(黎元洪)을 군정부의 도독으로 선출했다.

 

우창 봉기의 성공은 1개월 내에 전국적으로 퍼졌다. 후난성, 산시성(산서성), 장시성, 산시성(섬서성), 상하이, 저장성, 광둥성 등 각지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 독립을 선언했다. 이때 독립을 선언한 성은 후베이성, 허난성, 산둥성을 제외한 모두 14개 성으로 청나라의 통치는 빠르게 붕괴되었다.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성이 늘어나면서 호북군 정부는 통일된 정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로써 각 성의 대표들은 청 조정의 반격 위험을 무릅쓰고 한커우의 영국 조계지에서 모임을 가지고 중화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역사는 이를 1911년 신해년에 일어났다 하여 신해혁명이라고 한다.

 

중화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총통으로 쑨원이 선출되었다. 해외에서 모금 활동을 하던 그가 1911년 12월 마침 귀국했고, 혁명당원들이 그를 매우 신망했기 때문이다. 1912년 1월 1일, 쑨원은 난징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중화민국의 내각을 구성했다. 또한 혁명파, 입헌파, 구관료 등의 연합 형태인 임시참의원을 구성했다. 임시참의원은 2월 7일, 임시약법을 제정하여 공포했는데, 쑨원의 삼민주의를 바탕으로 한 주권 재민, 내각 제도, 국민 기본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11년 10월 10일의 우창 봉기가 시발점이 되어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신해혁명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1911년 10월, 혁명군이 중국 전역을 휩쓸고 있을 당시 청 조정은 더 이상 이들에게 맞설 힘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북양신군의 위안스카이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혁명군에 관한 일을 처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혁명군에 맞설 의사가 없던 위안스카이는 화의를 신청했다. 이에 중국 전체에 일어날 분쟁을 우려한 쑨원이 위안스카이에게 총통직을 제안했으며, 위안스카이가 이를 수락하여 총통이 되었다. 이것은 권력이 위안스카이 중심의 구관료에게 다시 넘어갔음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혁명 세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그래서 혹자는 신해혁명을 미완성의 혁명, 제1차 혁명이라고 한다. 이후 혁명군은 1913년에 제2차 혁명, 1915년에 제3차 혁명을 통해 중국의 황제 체제를 완전히 종식시켰다.

 

신해혁명이 이러한 오명을 얻은 것은 신해혁명으로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공화 제도가 이룩되었지만, 중국 전체에 뚜렷한 변화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중국 사회와 경제는 열강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봉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당시 중국에 민족자본주의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고, 자산 계급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해혁명은 쑨원이 스스로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계속 노력하자."라고 외쳤던 것처럼 미완성의 혁명이었다. 비록 신해혁명이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고 제2차, 3차 혁명이라는 숙제를 남겼지만, 청나라를 멸망시켜 2천여 년간 지속된 전제 정치를 종식시킨 것은 분명하다.

 

[청나라를 멸망시키며 중국의 봉건제도를 무너뜨렸지만 근대화의 과정으로서의 의의를 갖고 있다. 제도의 변화가 뚜렷하지 않은 혁명으로 인민들은 혼란이 극에 달하게 되고 변화에 따른 생존의 본능으로 제 살길 찾는 데에만 혈안이 된다. 그에 따른 인간성의 파탄과 비극들이 난무하게 된다.]

 

 

아큐정전

배경은 신해혁명. 얄팍하고 부화뇌동하는 민중들. 그 와중에 아큐는 경박한 인간의 최고봉이다. 당장 눈앞의 오락거리와 욕구, 그 순간의 기분 외에 아큐가 고민하는 건 없다. 옳고 그름 따위 관심 없이 이익이 되는 일만 쫓는다. 아큐 외의 인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하고 잔인한 인물들은 아큐가 누명을 써서 처형되었다는 사실에 관심도 없고 총살형이 처형으로는 심심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혁명의 물결은 어리석은 민중들에게 눈치를 보게 하고 그를 빙자한 강도짓을 일으키며 처형이라는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작가는 내내 소설 속의 인물들을 조롱한다. 특히 아큐에 대한 조롱은 웃음이 삐어져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것 만이었으면 이 소설은 지금까지 읽히지 못했을 것이다. 혁명이 뭔지도 모르고 먹고 살기에 급급한, 글조차 배워보지 못한 이들에게 혁명은 그저 반역의 하나 정도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중국의 신해혁명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밑바닥 인생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하다.

 

광인일기

과대망상증을 가진 자의 일기. 아큐정전과 시대 배경이 겹친다. 광인의 문장을 통해 알레고리로 잔혹해진 세상을 비판한다. 정의 없는 폭력을 행하는 자들을 향한 분노는 엄혹한 시대에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형식으로 쓰여 더욱 문학적 빛을 발한다.

 

콩이지

엘리트 룸펜의 이야기. 그의 무력하고 비관적인 삶의 태도는 기껏 술집에서 일하는 아이에게 글의 중요함을 알리려고 잠깐 노력하는 데에 그치고 만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패배의식이 팽배했던 사회의 단면.

 

폐병에 걸린 자식을 위해 인간의 피로 만든 만두를 먹이지만 아이는 죽고 만다. 피의 주인은 그저 생존(혁명파 고발로 추정됨)을 위해 형제들에 의해 처형장으로 끌려간 희생자. 두 아이의 무덤은 거의 나란하다. 제대로 된 약처방이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는 이와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시대의 변화가 나란히 무덤에 묻힌 꼴이다.

 

내일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 그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비극이 흔한 시대에 애도는 형식적일 뿐이다.

 

작은 이야기(알려지지 않은 수작)

변화가 극심한 시대의 거대한 사건들은 화자에게 잊혔으나 작은 사건 하나는 잊지 못한다. 가난한 자의, 더 가난하고 어려운 자에 대한 진심 어린 태도. 그에 화자는 돈 몇 푼으로 시혜를 베푼다. 화자는 못내 그 행동이 부끄럽다.

 

두발 이야기

중국의 쌍십절을 소재로 한 시대의 혼란.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이는 변발을 자른 걸로 변절을 의심받는다. 깨어있지 못한 민중의 아둔함.

 

풍파

봉건제도를 타파하려는 혁명의 물결은 변발을 자르는 걸로 상징된다. 그 와중에 세력이 엎치락뒤치락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민초들. 소문만으로도 그들은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 그렇게 겨우겨우 살아간다. 아이러니다. 정신이 아니라 겨우 변발이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한다는 것.

 

고향

계급 없이 이웃의 아이와 놀고 아름다웠던 고향. 그러나 그건 화자가 어릴 때의 기억일 뿐. 믿을 사람도 없고 더욱 피폐해졌으며 계급 구분은 여전히 엄격함. 차세대는 더욱 자유롭기를 바라는 화자. 희망이라는 건 누군가에겐 우상이고 누군가에겐 절박한 것이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일.

 

백광

무기력한 엘리트. 번번이 관리 시험(?)에 낙제한다. 세상 탓을 하며 그는 우연한 행운을 기대하며 땅을 판다. 그러나 땅 속에 행운이 있을 리가.

 

토끼와 고양이

예쁨을 받는 토끼와 미움을 받는 고양이. 고양이가 토끼를 해친다는 이유. 그러나 인간은 그토록 생명에게조차 차별적이다. 옳지 않다 여겨지는 상대에게 잔혹해지면서도 반성을 하지 않는다.

 

루쉰은 매우 위트 있고 압축된 글로 시대를 드러낸다. 그의 계급적 글쓰기는 정의라는 부분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우매한 민중에 대한 그의 태도는 연민이 가득하다. 루쉰 역시 엘리트였어서인지 그걸 뛰어넘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어떤 시대를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문학은 제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나는 주장한다.

:
Posted by 박모모
2019. 7. 18. 17:33

독의 꽃-최수철, 작가정신 내가 읽은 책2019. 7. 18. 17:33

이 소설은 단편적으로 분류하기가 매우 어렵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독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나 독을 품고 뿜어내고 해독하는 존재라는 게 기본 설정이다. 그 중에 가장 독에 예민한 사람들이 이 소설의 인물들이다. 독과 약의 상관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독성 등을 사유적이고 현학적으로 엮어놓은 소설이다.

 

액자소설이고 알레고리이며 판타지이지만 리얼리즘인 관념소설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독과 약에 관한 작가의 깊은 사유도 재밌지만 인물들의 관계가 매우 독특하다.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의지하고, 이중적이면서도 목적지향적이고, 그러다 서로를 닮아가고, 혹은 타인의 독을 품어 그 타인을 경멸하면서도 사랑하는, 정말 기괴한 관계들인데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전에 최수철의 '침대'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던 작가의 집요함을 이 소설에서도 느꼈다. 예전엔 관념의 색이 너무 짙어 서사가 묻혔다면 이젠 사유와 서사가 너무나 잘 엮여있다.

 

서울대 출신 그 연배 작가 중 최수철의 작품이 나는 제일 좋다.

:
Posted by 박모모

1. 우럭 한 점 우주의 맛-박상영

 

매우 다층적인 소설이다. 신앙와 신념, 보수와 진보, 가족과 세계에 대한 상반적 열망에 사로잡힌 엄마와 형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를 자신에게 동화시키려고 한다. 그 열망은 사랑이 자기투영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관계적 약자에게서 성공을 꿈꾼다. 사랑 앞에서도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사랑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성장한다. 화자의 경우처럼. 이 소설을 단지 퀴어소설이라고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 퀴어소설은 이제 더 이상 장르가 아니다. 퀴어가 여전히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퀴어인 화자는 약자로서 세상에 호소하지 않는다. 아주 맛깔난 소설이다.

 

2. 공의 기원-김희선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 축구공으로 자본주의를 조명한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수염이 덥수룩한 옆집 남자(마르크스)의 책을 출간해 자본을 증식시키고 신화화 된 공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에는 착취와 거짓된 저널리즘이 뒤섞여있다. 성공에 붙는 신화는 거짓된 저널리즘과 한치의 차이도 없다. 결국 백 프로 기계화 되어 더 이상 아동착취가 일어나지 않는 축구공 공장은 노동을 소외시킨다. 공 하나로 인간의 이중성과 시스템적 불균형을 아우를 수 있는 저력. 기대되는 작가다.

 

3. 시간의 궤적-백수린

 

스토리는 지나치도록 일상적이다. 관계가 맺어지고 탄탄해지고 끊어지고 희미해지는 과정. 뿌리를 내리는 관계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합의에 이른다. 두 관계가 다른 건 부부와 친구라는 차이도 있지만 물리적 거리라는 차이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대체 왜 이 소설을 썼을까. 이 소설은 어떻게 이 선집에 오르게 되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4. 넌 쉽게 말했지만-이주란

 

소설 속 화자의 과거는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쫓기듯 살았을 것이고 자신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조금도 여유는 없는. 그에 지쳐버린 화자는 조금 위험하고 나태한 방식으로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하려 한다. 일상의 모든 것들을 여유롭게 대하고 긍정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을 남에게 한다는 건 조언일 수도 있지만 그저 분노의 표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화자는 정말로 그렇게 살지 않고 싶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말을 하기 위해 너무 많은 문장을 소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5. 우리들-정영수

 

정영수스러움이 있다. 뭐랄까, 자기 성찰과 소외, 그 와중에 귀여운 찌질함 같은 것들. 소설가 소설로 볼 수도 있고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사람의 자기변명 같은 걸로 볼 수도 있고 흔하디흔한 연애 이야기일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 난 이 소설을 그렇게 읽기로 했다.

 

6. 데이 포 나이트-김봉곤

 

굳이 퀴어소설로 분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패한 사랑 이야기. 자신을 해치고 성적 지향마저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 흔들렸던 일. 좀 시시하네. 퀴어 소재는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데.

 

7. 하긴-이미상

 

‘세대론에 입각한 86 비판론을 나르시시즘의 인력하게 재전유하고 있’다는 비평의 문장을 인용한다. 적확한 분석이다. 더불어 엘리트 선민사상을 가진 그 세대의 끝까지 오만하고 위선적인 행태(손주에게 공개 편지)에선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세대론은 전형적이었지만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욕망을 날것으로 드러낸 점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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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오동의 숨은 소리여

상처하고 큰아들네에 더부살이를 하게 된 노인. 사람과 정을 통하고 싶고 설레는 감정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정염이든 아니든, 그 경계를 오가는 것이든 노인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그런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경멸과 혐오다. 젊은 사람들에게 노인은 죽은 사람인 것이다. 관의 재료인 오동나무, 그 속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넣을 수는 없는 법.

 

티타임의 모녀

가난한 모녀의 대화. 숨길 수 없는 가난은 뒤꿈치에서 나타난다. 계층의 차이는 계급의 차이가 돼버리는 현실. 운동권인 남자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면서도 차이를 누린다. 그 차이로 인한 불화가 해결될 수 있을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김현승의 시 ‘눈물’의 한 구절

대화로만 쓰인 소설. 화자가 손윗동서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한다. 집회에 나간 아들을 잃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화자. 그런 화자를 지나치게 배려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주변인들. 아들의 죽음의 의미를 확장하는 이들과의 연대. 그렇게 씩씩하게 살아가던 화자는 오로지 어미의 손길만을 필요로 하는 다른 심각한 병자인 아들과 그 아들을 병구완하는 데에 지쳐있으나 자기 속으로 낳은 생명체에 대한 신성한 의무를 감내하는 모자를 보며 울음이 터지고 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살아왔지만 순수하게 슬퍼하고 난 후의 화자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수가 있답니까. 어찌 그리 독한 세상이 다 있었을까요. 그나저나 그 독한 세상을 우리가 다 살아내기나 한 걸까요.” 슬픔도 애도도 마음을 배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막상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워낙 명작으로 칭송 받는 작품이다.

화자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순수한 슬픔이었던 것. 교과서적인 분석임. 내 주관적인 분석은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용기. 고등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아들을 잃고 나서 신까지 부정했던 작가의 경험과 고뇌, 고찰이 잘 담겨있는 작품.

 

가는 비, 이슬비

여자의 순결에 대한 남자의 집착. 의심은 확신이 되고 추궁으로 발전하며 파국을 맞는다. 가는 비, 이슬비가 다를 리 없건만 남자는 여자를 산 일에 당당하고 여자는 있지도 않았던 성경험으로 남자에게 시달리는 것이다. 수자(주인공)이 입사하면서 면접에서 좋아하는 작가를 ‘버지니아 울프’라고 얘기한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립할 수 있는 여성으로서 살기 위해 경제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버지니아 울프는 앞서 간 페미니스트였다. 남녀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만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다는 걸 말장난 같은 제목에 담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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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친절한 복희 씨(개인적으로 박완서 작가 소설집 중 최고라고 여김)

 

그리움을 위하여

식모처럼 부리던 사촌 동생이 재혼을 하게 된다. 화자는 솜씨 좋은 동생을 잃고 싶지 않다. 시혜적 태도, 상전 의식으로 꽉 차있는 화자는 동생의 재혼을 방해하려 든다. 그러나 동생이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 동생이 살고 있는 섬을 그리움의 장소로 남겨둔다.

 

그 남자네 집

전쟁의 와중에 했던 연애. 서로에게 몰두할 수 있었던 건 시절의 유일한 사치였기 때문. 과거에 대한 회상을 현재로까지 확장하여 장편으로 만듦.

 

마흔아홉 살(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유복하고 자식을 다 키워 자신의 쓰임에 대한 회의를 하는 중년 여성들. 남자 노인들 목욕 봉사를 하기로 함. 주인공인 그 여자가 주도하고 험한 일도 다 맡았기에 회장이 됨. 권력욕 없음. 그 여자는 다들 꺼려하는 노인들의 성기 부분을 닦아줌. 그럴 때의 그 여자는 성녀 같음. 그러나 점잖은 자신의 시아버지의 팬티는 집게로 내동댕이치듯 세탁기에 넣어버림.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위가 닿은 곳 하나 어쩌지 못하는 무능함에 대한 경멸이자 시어머니가 아닌 시아버지를 떠맡아 살림에 도움조차 안 된다는 멸시를 담은 행위. 그 이중성에 대해 토로하는 회원들. 목욕 봉사 모임이 성당의 후원을 받게 될 예정이어서 회장 자리를 갖고 싶어 하는 권력욕이 드러남. 시혜와 우월감이 바탕이 된 목욕 봉사는 그 어떤 궂을 일도 마다하지 않게 만들지만 의무인 시아버지 팬티 빨래는 그저 껄끄러움. 굳이 중산층의 위선 의식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소설임. 다른 이에게는 이름이 있지만 주인공에게는 ‘그 여자’라는 대명사를 쓴 건 그 누구나 이런 이중성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로 짐작됨.

 

후남아, 밥 먹어라

결혼해 미국 가서 살게 된 후남. 존재감 없는 셋째 딸은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핏줄들에게 더욱 잘한다. 질투를 사려면 자신보다 더 궁핍한 존재가 필요한 법. 그러나 후남에게 필요했던 건 궁핍 속에 깃든 애정이었음을.

 

거저나 마찬가지

세상 잇속에 숙맥인 화자와 기남. 거저나 마찬가지라는 건 거저도 아니고 거저가 아닌 것도 아닌, 사용자(권력자)의 편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를 알아감. 기남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에게 거저 부림을 당하고 조강지처나 마찬가지인 화자는 ‘마찬가지’를 벗어나기 위해 아이를 갖자는 제안으로 칼을 빼든다.

“(부모가) 너 같은 자식 하나 없는 셈 치겠다는 소리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누가 할 소리인지 몰랐다. 그런 소리는 적어도 있는 집 부모나 하는 소리가 아니었던가. 가난을 찬양하는 건 부자들이나 즐겨 하는 짓인 것처럼.”

 

촛불 밝힌 식탁

교장으로 은퇴한 화자는 서울 사는 아들네와 마주 바라보는 아파트에 살게 된다. 불이 꺼진 걸로 아들네의 부재를 확인하던 화자는 어느 날부터 아들 집의 불이 꺼졌을 때도 희미한 잔광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부모의 간섭과 드나듦이 싫어 집에 없는 척하고 사는 것이다. 지방과 도시의 가족 문화 차이가 드러난다.

 

대범한 밥상

졸지에 외동아들과 외동딸을 잃고 손자 손녀를 돌봐야 하는 남녀 사돈지간. 자연스럽게 살림을 합쳐 산다. 그들을 향한 돈과 치정에 관한 소문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화자는 자식들에게 재산 분배에 골머리를 썩다 친구를 찾아간다. 너무 큰 고통 앞에서 남의 눈길이나 돈은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오히려 남은 재산은 남은 자식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오히려 이치가 된다는 걸, 부모의 계산은 자식들에게 분란만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친절한 복희씨

친절한 금자씨의 패러디다. 강간을 당해 아이 딸린 홀아비에게 시집을 가게 된 복희. 그녀에게는 사람을 죽일 만큼의 아편이 있다. 남편에게 복수하고픈 마음은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쪽으로 향한다. 그렇게 늙은 부부.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남편의 성욕은 지대하다. 배변 뒤처리를 못해 복희가 거들 때 그는 성적 쾌감을 느낀다. 혼자 하는 산책에서 돌아온 그가 복희에게 약국에 가라고 한다. 남편이 원한 건 비아그라, 그 몸에 위험하다고 약사가 아내를 오게 하라고 이른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그 짓을 좋아해서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약사의 눈빛에 조롱과 경멸이 깃든 걸 보고 내달려 집으로 온 복희씨는 아편을 가지고 나와 한강에 던져버린다. 금자씨와의 차별점-복희는 가해자인 그를 짐승에게 느끼는 연민의 정으로 대한다. 그럼에도 비아그라 사건은 복희에게 살의를 느끼게 하고 결국 살해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위험한 약을 버리는 것이다. 경멸과 연민이 동시에 작용.

 

그래도 해피엔드

은퇴 후 한적한 교외로 이사한 화자. 서울에서 있는 동창 모임에 가기 위해 구두를 신는다. 2호선 전철에만 익숙한 노년의 화자는 버스를 탈 때부터 ‘있는 척’하는 할머니로 놀림을 받는다. 늙어 높은 구두를 신는 데에 대한 놀림도 포함된다. 그러나 화자는 동창들 중 자신만 구두를 신을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마지막에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 택시 기사가 유턴을 해온 걸 보면서 그래도 화자는 자신을 놀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세련되고 우아한 할머니로 봐주는 데에 행복을 느낀다. 욕구(여기서는 예뻐 보이고 싶은)가 늙는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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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세상에 예쁜 것(마지막 수필집)

 

따님이 작가가 프린트해놓았던 것을 모아 책을 낸 것.

박완서 작가 자신의 이야기(소설로 거의 다 쓴 내용).

문학을 하고 싶었던 건 대학에 입학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맞이한 풍파. 깊은 내면에서는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작가를 달구었던 것은 창작욕이 아니라 증오였다. 복수심과 증오는 세월의 다둑거림으로 위무받을 수 있을 뿐, 섣불리 표현되어선 안 된다는 걸 차차 알게 된다. 쓰지 않고 보통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삶을 살고 배웠던 경험은 데뷔작부터 원숙한 글을 쓰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박경리 선생에 대한 회고-개인적 친분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성정은 서로 매우 다르다. 단단하고 매끄러운 바윗돌 같은 박경리 선생, 가시가 돋친 아름다운 선인장 같은 박완서 작가. 박경리 선생은 담배가 병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끽한 사람. 박경리 선생은 육체노동을 많이 했다. 삯바느질부터 해서 농삿일 등. 젊은 날엔 생계를 위해서였고 나중엔 후배 작가들이 편하게 글을 쓰게 해주려고였다. 박경리 작가는 육체노동을 정신노동의 휴식으로 삼았다. 또 육체노동의 고됨을 달래려 정신노동을 했다. 정반합. 이 단어가 떠올랐다.

박완서 작가의 일면(문장) “잠이 안 오면 내일은 어떻게 지내나 근심되는데, 자정이 넘도록 잠이 안 오면 와인을 한 잔 마십니다. 와인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혼자 마실 때 특히 레드와인을 선호하는 것은 그 빛깔의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혼자 마시는데도 타인을 의식한다 할까, 내가 혼자 소주를 마시는 것을 누가 보면 얼마나 궁상맞아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대로 된 잔을 꺼내어 마십니다. 레드와인은 조금 사치스러운 느낌이 나잖아요. 초라하고 청승맞기보다는 혼자 마시더라도 약간의 사치를 하고 싶은, 그런 거 있잖아요? 일종의 허영이지요. 저도 허영이 많습니다. 보는 사람도 없어서 아무렇게나 마셔도 되는데,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있을 때는 소주나 양주도 마실 수 있는데, 혼자 마실 때에는 이상하게 멋을 부립니다. 치즈 같은 것도 예쁘게 썰어놓고 마십니다.”-트위터나 인스타를 하셨으면 잘하셨을 것 같다. 사실 인스타보다는 트위터형 인간-“6.25전쟁 중 한 달 남짓을 파주 쪽 산골에 숨어서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종이와 활자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그 시간을 견디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곧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마침 다 떨어진 벽지를 군데군데 땜질한 신문지 활자가 보였다. 나는 그 얼마 안 되는 활자를 읽고 또 읽고 나중에는 반닫이 위에 올라서서 천정을 땜질한 활자까지 읽었다.”

여러 유명 인사에게 쓴 편지와 유명 인사에 대한 추모글 여러 편 중 다소 의외였던 한 편. 자연 질서 안에서(김창완 씨 보셔요)-친분이 있었던 듯. 어쨌건 작가는 내내 마당에 핀 꽃과 꽃에 모여드는 벌과 자연에서 난 먹을거리만 이야기한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자연 질서 안에 있다는 게 한없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창완 씨하고도 이 평화, 이 행복감을 나누고 싶습니다. 자전거 타고 방송국에 출근하는 김창완 씨 옷깃을 부풀리는 바람에 실려.”-아마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은 자연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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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나의 아름다운 이웃(짧은 소설)-70년대

 

“아들 가진 쪽에선 중매결혼 그거 참 할 만한 거더라고. 그게 말야, 꼭 돈을 핸드백에 잔뜩 넣고 백화점으로 물건 고르러 다니는 것만큼 신이 난다니까.”-속물적인 중산층 중년 여성의 대사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반면에 여전히 여성의 도리로 여겨지는 기성세대의 구습이 지독하게 유지되던 시절. 아파트가 보급되며 부의 기준이 아파트가 되던 시절. 땅에 대한, 그리고 가족처럼(긍정적, 부정적 측면 모두) 지내는 이웃들과의 관계는 아파트의 단절되고 개별화된 생활문화로 변해가던 시절.

아파트 열쇠-여고 동창생들.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번다는 자부심. 직업은 교수부터 야쿠르트 아줌마까지 다양. 당당하고 앞서 나가는 여성들은 그럼에도 오랜 세월 사회적으로 학습된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지지 못한 현실을 그림. (박완서 작품을 관통하는 시선인데 다른 작품과 시선이 바뀜)

외래어 노이로제-무식한 노파가 아님에도 세대 간의 단절을 정보와 지식에서 느끼는 화자. 특히 일제 강점기를 겪은 노파는 영어가 일상어가 된 젊은이들의 언어에 대해 불편을 넘어 부담을 느끼기까지 함. 우연히 들른 호텔 미용실. 호화로운 데에 기죽어 있던 노파는 “애니 커트로 하시겠어요? 쎄쎈느 커트로 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듣고 당황함. 그 중 덜 비싼 걸로 선택한 화자(그럼에도 시중가의 세 배 가까운 가격)는 초라해짐. 다른 손님이 오고서야, 애니 커트, 쎄쎈느 커트는 언니 커트, 선생님 커트였다는 걸 알게 됨. 즉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 낸 오해. 노인들의 정보 소외가 더욱 심각해진 요즘 현실에 비추어도 손색이 없는 소재.

아무래도 시대가 70년대이다 보니 결혼 앞에 매겨지는 여성의 상품성 같은 것들이 지금 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낙태를 반대하는 주제의 소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짧은 소설집이 시대에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는 건 그때의 고민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게 적지 않다. 더욱이 매우 짧은 소설이어서 읽기 편하고 박완서 작가의 위트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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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역시 드라마로 만들기 좋은 이야기다. 80년대 초반, 가부장적이고 남아 선호 사상에 지금에 비해 현격하게 남녀차별이 극심하던 시절,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며 가부장제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결국 저항해내는 여성의 이야기다. 지금 시대에 읽기엔 너무 올드하고 구시대적인 이야기지만 80년대를 돌이켜 보면 정말 파격적인 페미니즘 소설이다. 삶에서, 고찰에서 비롯된 페미니즘의 힘은 매우 크다.

 

서울 사람들

 

80년대 자본이 팽창하던 시절이 배경이다. 자본주의적 계급 질서의 적나라한 모습과 신분 상승을 추구하는 욕망이 처절하게 유린당하는 이야기, 윤리나 도덕에 대한 고민 없이 자본의 팽창만을 추구하는 시대적 가치관을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중에는 드문, 본격 세태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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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아주 오래된 농담

 

현금에 대한 묘사-현금 화자(뜬금없이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감): 한여름 동안 나의 피부는 한꺼번에 20년은 더 늙은 것 같았고, 자외선 크림을 아낌없이 처바른 얼굴과 팔다리는 벌이나 파리, 모기의 좋은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모할머니를 비롯해서 그 마을에 남아 있는 이들은 거의 다 일생을 농사일에 바쳐온 여자 노인들인데 자세히 보면 체형이 도시의 노인들과 현저하게 달랐다. 어깨, 허리, 팔, 다리, 손목, 발목, 걸음걸이까지 이상하게 굽고 비뚤어져 있었다. 나의 나태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누가 나를 단죄한다고 해도, 그저 죽여줍쇼 하고 순종할 각오까지 있다고 해도 그들처럼 새까맣고 쭈글쭈글한 피부로 그들처럼 어기적어기적 걷기는 싫었다. 나의 긴 머리를 베어 그들의 신을 삼고 싶을 만큼 그들을 존경한다 해도 그들처럼 되기는 싫었다. 앉으나 서나 주님밖에 모르는 골수 예수쟁이들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건 싫어할 걸.

 

드라마로 만들기에 참 좋은 스토리이다. 그러니 스토리 자체는 직접 읽어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와 맞물려 있는 가부장제를 이야기한다. 도덕적인 위선, 오만하고 비굴한 자본, 타협을 통한 저항 등 인간과 삶의 형태가 얼마나 입체적인지 보여준다. 자본으로 자본을 야유하고 가부장제의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거짓된 여성 평등의 문제를 지적한다. 가족주의를 가장 경멸하는 현금은 오히려 대안적 형태(고아원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로 가족주의를 환원한다. 당연한 것도 없고 무조건 그른 것도 없다. 이것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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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
2019. 7. 4. 08:40

그 남자네 집-박완서, 세계사 내가 읽은 책2019. 7. 4. 08:40

그 남자네 집(단편을 기초로 한 장편소설)

한국전쟁 중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이웃의 먼 친척 한 살 아래의 남자. 데이트 비용 마련을 위해 남자가 어미를 착취하는 걸 모른 척하는 화자. 연애에 전적으로 몰두했던 건 그 시대에 할 수 있었던 사치였다고 서술함. 언제 죽을지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전쟁의 와중이었기에. 오히려 전쟁이 끝난 후 살아가야 한다는 중압감이 그들의 집중도를 흩트려 놓는다. 화자의 남편은 이념을 취향으로 설명한다. 화자는 화를 내지만 남편은 찬양과 동원으로 획일화 시키는 당시의 좌익에 대한 감각적 반감으로 설명. 이념을 취향으로 설명하면 왜 안 되는가, 화자도 동의하게 됨. 대신 남편은 취향에 대해 관대함.

시가-그 집구석(먹거리에 모든 정성을 쏟아 붓는, 먹기 위해 살아가는 시가의 가통을 경멸)

과거의 장소를 찾았을 때 기억보다 길이 좁거나 크기가 작다는 걸 느낌. 작가의 표현. “내 머릿속 지도의 거리는 실재하는 거리가 아니라 다만 확보하고 싶은 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전쟁 당시의 선술집에서의 시낭송.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

착한 사람에 대한 화자의 문장. “착한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만 착해야 된다고 믿기 때문에 도덕적인 책임은 으레 남한테 덮어씌우려 드는 법.” 인간에 대한 고찰.

그 남자에게 청첩장을 준다. 남자는 운다. 화자도 운다.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일종의 감정 정리. 받아들임.

변화에 대한 문장. “연탄이 지겨워진 건 더 편리한 프로판 가스가 보급되고 나서고, 살인가스로 저주받기 시작한 것은 주거환경이 중앙난방식 아파트로 변하면서부터였다. 이용 가치 있는 게 사라지려면 꼭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건 인간의 경우만이 아닌 것 같다.”

그 남자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 “나는 작아도 좋으니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새끼 까고 싶었다. 그 남자네 집도, 우리 집도 사방이 비 새고 금 가고 조만간 무너져 내릴 집이었다.” 여기서 집은 단순히 건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정, 그리고 그 사람의 성향까지 포함하는 것.

첫사랑 화자를 잊지 못하는 그 남자.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이 생김. 밀회. 그 남자(현보) 뇌 속에 벌레. 뇌수술 후 실명.

임신과 출산. “나는 옆에 누워있는 핏덩이가 하나도 예쁘거나 소중하지 않았다. 낳아놓기만 하면 모성애는 저절로 우러나는 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저것 때문에 아무데도 자유롭게 갈 수 없고, 정 가고 싶으면 달고 다녀야 할 생각 때문에 나는 수렁처럼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헤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우울증이었다. 모성애가 우러나기는커녕 일생일대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배고파하는 아기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서 서럽게 울었다. 아기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유 때문에 우는 자신을 마녀처럼 느꼈다.”-모성애에 대한 거부감. 키우면서 모성애가 생겨남.

4남매 출산. 양옥집으로 이사. 생기 없는 중년의 남편에게 바람을 피우라고 권하는 화자. 대신 몰래. 돈이 없어 바람 못 피운다는 남편. (도발적)

화자의 본가를 드나들고 있었던 현보. 화자와 만남. 눈이 보이는 것처럼 행동함. 얼굴은 도리어 청춘으로 돌아감. 제 자신은 살이 찌고 볼썽사나운데 화자는 아직도 어린애처럼 구는 그 남자에게 화가 치밀어 어린아이에게 하듯 마구 혼을 냄. 그렇게 첫사랑과 밀회의 기대는 끝남. 그 남자의 부고. 그러나 화자는 그 남자의 엄마 장례식 때 이미 그 남자를 보냄.

 

춘희라는 인물-화자의 소개로 미군부대 취업. 생활고 해결을 위해 양공주가 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 일인데 가족들도 이웃들도 그녀를 멸시함. 잦은 중절 수술로 인해 불임이 되었음. 평생 불감증이었다는 고백은 그녀 역시 양공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억울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터. 국가 산업을 일으킬 정도의 미군 대상 성매매가 이젠 역사로 기록되는 현실. 그 개인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말하는 춘희. 춘희의 입을 통해 질곡 많은 이 나라 여성들의 삶의 한 단면을 드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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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