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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의 숨은 소리여

상처하고 큰아들네에 더부살이를 하게 된 노인. 사람과 정을 통하고 싶고 설레는 감정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정염이든 아니든, 그 경계를 오가는 것이든 노인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그런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경멸과 혐오다. 젊은 사람들에게 노인은 죽은 사람인 것이다. 관의 재료인 오동나무, 그 속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넣을 수는 없는 법.

 

티타임의 모녀

가난한 모녀의 대화. 숨길 수 없는 가난은 뒤꿈치에서 나타난다. 계층의 차이는 계급의 차이가 돼버리는 현실. 운동권인 남자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면서도 차이를 누린다. 그 차이로 인한 불화가 해결될 수 있을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김현승의 시 ‘눈물’의 한 구절

대화로만 쓰인 소설. 화자가 손윗동서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한다. 집회에 나간 아들을 잃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화자. 그런 화자를 지나치게 배려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주변인들. 아들의 죽음의 의미를 확장하는 이들과의 연대. 그렇게 씩씩하게 살아가던 화자는 오로지 어미의 손길만을 필요로 하는 다른 심각한 병자인 아들과 그 아들을 병구완하는 데에 지쳐있으나 자기 속으로 낳은 생명체에 대한 신성한 의무를 감내하는 모자를 보며 울음이 터지고 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살아왔지만 순수하게 슬퍼하고 난 후의 화자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수가 있답니까. 어찌 그리 독한 세상이 다 있었을까요. 그나저나 그 독한 세상을 우리가 다 살아내기나 한 걸까요.” 슬픔도 애도도 마음을 배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막상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워낙 명작으로 칭송 받는 작품이다.

화자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순수한 슬픔이었던 것. 교과서적인 분석임. 내 주관적인 분석은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용기. 고등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아들을 잃고 나서 신까지 부정했던 작가의 경험과 고뇌, 고찰이 잘 담겨있는 작품.

 

가는 비, 이슬비

여자의 순결에 대한 남자의 집착. 의심은 확신이 되고 추궁으로 발전하며 파국을 맞는다. 가는 비, 이슬비가 다를 리 없건만 남자는 여자를 산 일에 당당하고 여자는 있지도 않았던 성경험으로 남자에게 시달리는 것이다. 수자(주인공)이 입사하면서 면접에서 좋아하는 작가를 ‘버지니아 울프’라고 얘기한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립할 수 있는 여성으로서 살기 위해 경제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버지니아 울프는 앞서 간 페미니스트였다. 남녀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만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다는 걸 말장난 같은 제목에 담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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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