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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럭 한 점 우주의 맛-박상영

 

매우 다층적인 소설이다. 신앙와 신념, 보수와 진보, 가족과 세계에 대한 상반적 열망에 사로잡힌 엄마와 형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를 자신에게 동화시키려고 한다. 그 열망은 사랑이 자기투영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관계적 약자에게서 성공을 꿈꾼다. 사랑 앞에서도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사랑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성장한다. 화자의 경우처럼. 이 소설을 단지 퀴어소설이라고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 퀴어소설은 이제 더 이상 장르가 아니다. 퀴어가 여전히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퀴어인 화자는 약자로서 세상에 호소하지 않는다. 아주 맛깔난 소설이다.

 

2. 공의 기원-김희선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 축구공으로 자본주의를 조명한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수염이 덥수룩한 옆집 남자(마르크스)의 책을 출간해 자본을 증식시키고 신화화 된 공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에는 착취와 거짓된 저널리즘이 뒤섞여있다. 성공에 붙는 신화는 거짓된 저널리즘과 한치의 차이도 없다. 결국 백 프로 기계화 되어 더 이상 아동착취가 일어나지 않는 축구공 공장은 노동을 소외시킨다. 공 하나로 인간의 이중성과 시스템적 불균형을 아우를 수 있는 저력. 기대되는 작가다.

 

3. 시간의 궤적-백수린

 

스토리는 지나치도록 일상적이다. 관계가 맺어지고 탄탄해지고 끊어지고 희미해지는 과정. 뿌리를 내리는 관계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합의에 이른다. 두 관계가 다른 건 부부와 친구라는 차이도 있지만 물리적 거리라는 차이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대체 왜 이 소설을 썼을까. 이 소설은 어떻게 이 선집에 오르게 되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4. 넌 쉽게 말했지만-이주란

 

소설 속 화자의 과거는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쫓기듯 살았을 것이고 자신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조금도 여유는 없는. 그에 지쳐버린 화자는 조금 위험하고 나태한 방식으로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하려 한다. 일상의 모든 것들을 여유롭게 대하고 긍정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을 남에게 한다는 건 조언일 수도 있지만 그저 분노의 표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화자는 정말로 그렇게 살지 않고 싶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말을 하기 위해 너무 많은 문장을 소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5. 우리들-정영수

 

정영수스러움이 있다. 뭐랄까, 자기 성찰과 소외, 그 와중에 귀여운 찌질함 같은 것들. 소설가 소설로 볼 수도 있고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사람의 자기변명 같은 걸로 볼 수도 있고 흔하디흔한 연애 이야기일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 난 이 소설을 그렇게 읽기로 했다.

 

6. 데이 포 나이트-김봉곤

 

굳이 퀴어소설로 분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패한 사랑 이야기. 자신을 해치고 성적 지향마저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 흔들렸던 일. 좀 시시하네. 퀴어 소재는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데.

 

7. 하긴-이미상

 

‘세대론에 입각한 86 비판론을 나르시시즘의 인력하게 재전유하고 있’다는 비평의 문장을 인용한다. 적확한 분석이다. 더불어 엘리트 선민사상을 가진 그 세대의 끝까지 오만하고 위선적인 행태(손주에게 공개 편지)에선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세대론은 전형적이었지만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욕망을 날것으로 드러낸 점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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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