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작가정신 내가 읽은 책2019. 7. 8. 08:39
나의 아름다운 이웃(짧은 소설)-70년대
“아들 가진 쪽에선 중매결혼 그거 참 할 만한 거더라고. 그게 말야, 꼭 돈을 핸드백에 잔뜩 넣고 백화점으로 물건 고르러 다니는 것만큼 신이 난다니까.”-속물적인 중산층 중년 여성의 대사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반면에 여전히 여성의 도리로 여겨지는 기성세대의 구습이 지독하게 유지되던 시절. 아파트가 보급되며 부의 기준이 아파트가 되던 시절. 땅에 대한, 그리고 가족처럼(긍정적, 부정적 측면 모두) 지내는 이웃들과의 관계는 아파트의 단절되고 개별화된 생활문화로 변해가던 시절.
아파트 열쇠-여고 동창생들.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번다는 자부심. 직업은 교수부터 야쿠르트 아줌마까지 다양. 당당하고 앞서 나가는 여성들은 그럼에도 오랜 세월 사회적으로 학습된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지지 못한 현실을 그림. (박완서 작품을 관통하는 시선인데 다른 작품과 시선이 바뀜)
외래어 노이로제-무식한 노파가 아님에도 세대 간의 단절을 정보와 지식에서 느끼는 화자. 특히 일제 강점기를 겪은 노파는 영어가 일상어가 된 젊은이들의 언어에 대해 불편을 넘어 부담을 느끼기까지 함. 우연히 들른 호텔 미용실. 호화로운 데에 기죽어 있던 노파는 “애니 커트로 하시겠어요? 쎄쎈느 커트로 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듣고 당황함. 그 중 덜 비싼 걸로 선택한 화자(그럼에도 시중가의 세 배 가까운 가격)는 초라해짐. 다른 손님이 오고서야, 애니 커트, 쎄쎈느 커트는 언니 커트, 선생님 커트였다는 걸 알게 됨. 즉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 낸 오해. 노인들의 정보 소외가 더욱 심각해진 요즘 현실에 비추어도 손색이 없는 소재.
아무래도 시대가 70년대이다 보니 결혼 앞에 매겨지는 여성의 상품성 같은 것들이 지금 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낙태를 반대하는 주제의 소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짧은 소설집이 시대에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는 건 그때의 고민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게 적지 않다. 더욱이 매우 짧은 소설이어서 읽기 편하고 박완서 작가의 위트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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