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박완서, 세계사 내가 읽은 책2019. 7. 4. 11:16
아주 오래된 농담
현금에 대한 묘사-현금 화자(뜬금없이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감): 한여름 동안 나의 피부는 한꺼번에 20년은 더 늙은 것 같았고, 자외선 크림을 아낌없이 처바른 얼굴과 팔다리는 벌이나 파리, 모기의 좋은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모할머니를 비롯해서 그 마을에 남아 있는 이들은 거의 다 일생을 농사일에 바쳐온 여자 노인들인데 자세히 보면 체형이 도시의 노인들과 현저하게 달랐다. 어깨, 허리, 팔, 다리, 손목, 발목, 걸음걸이까지 이상하게 굽고 비뚤어져 있었다. 나의 나태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누가 나를 단죄한다고 해도, 그저 죽여줍쇼 하고 순종할 각오까지 있다고 해도 그들처럼 새까맣고 쭈글쭈글한 피부로 그들처럼 어기적어기적 걷기는 싫었다. 나의 긴 머리를 베어 그들의 신을 삼고 싶을 만큼 그들을 존경한다 해도 그들처럼 되기는 싫었다. 앉으나 서나 주님밖에 모르는 골수 예수쟁이들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건 싫어할 걸.
드라마로 만들기에 참 좋은 스토리이다. 그러니 스토리 자체는 직접 읽어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와 맞물려 있는 가부장제를 이야기한다. 도덕적인 위선, 오만하고 비굴한 자본, 타협을 통한 저항 등 인간과 삶의 형태가 얼마나 입체적인지 보여준다. 자본으로 자본을 야유하고 가부장제의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거짓된 여성 평등의 문제를 지적한다. 가족주의를 가장 경멸하는 현금은 오히려 대안적 형태(고아원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로 가족주의를 환원한다. 당연한 것도 없고 무조건 그른 것도 없다. 이것이 세상이다.
'내가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작가정신 (0) | 2019.07.08 |
---|---|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세계사 (0) | 2019.07.05 |
그 남자네 집-박완서, 세계사 (0) | 2019.07.04 |
저문 날의 삽화-박완서 소설집, 문학과 지성사 (0) | 2019.07.03 |
나목. 도둑맞은 가난-박완서, 민음사 (0) | 2019.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