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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날의 삽화(소설집)

 

로열 박스

최고급 아파트의 최고 전망, 최고 위치에 사는 부유층 선희. 그를 세련되게 지배하고 다스리는 시아버지. 며느리의 외로움을 질문하는 시아버지. 실은 그 역시 외로운 존재.

 

무(안개)중

돈 많은 남자(아빠-화자를 귀여워해주고 놀고 먹도록 돌봐주는 친절한 남자)의 숨겨둔 애인인 화자. 화류계를 떠돌던 화자가 남자를 만나고 아파트를 장만함. 1층을 고집함. 도망칠 곳을 마련하기 위해. 아파트는 안정, 가족의 상징. 그렇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언제 쫓기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옆집 사는 남자 역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쫓긴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아낸 화자. 화자는 그를 쫓아다님. 현상수배범인 그 남자는 결국 자수함. 쫓기는 걸 견딜 수 없는 두 사람의 다른 선택. 그러나 화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미래일 것. 더불어 매스컴의 보도가 그저 작게 보이는 현상을 과대하게 해석하는 걸 쫓기는 걸로 이해하는 화자. 옆집 남자의 자잘하고 사소한 감각과 일상을 보도에서는 볼 수 없음.

 

소묘(흴 소, 그리다 묘)-단색으로 그린 그림

욕망을 제거 당한 채 시어머니의 꼭두각시로 살아온 시아버지와 남편. 서른 넘은 나이에 겨우 전자오락에 욕구를 발산하는 남편을 가여워함. 화자는 그 남편의 야생성(삶에 대한 욕구)를 되살려놓을 수 있을까.

 

초대

남편의 가식적인 모임에 안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 희주. 그들의 모든 의견은 희주와 다르고 희주의 폭발하지 못한 억눌림은 구정물 세례를 받고 있을 애먼 아랫집 여자에게로 향한다.(같은 아파트에 사는, 같은 계급의 사람)

 

저문 날의 삽화1(시리즈는 중년 이상의 시점)

“조금도 새롭지 않은 나날들, 예전에도 수없이 저질렀음직한 잘못과 어리석은 짓, 헛된 욕망의 되풀이는 사는 걸 쉽고 익숙하게도 했지만 때로는 비명을 지르고 싶도록 진부하고 무의미하게도 했다.”

남편 친구가 밖에서 낳아온 막내인 영택을 의붓아들로 들이며 화자는 아들 가진 기쁨을 누려보지만 모든 가족이 영택을 귀애하자 오히려 영택을 심정적으로 밀어낸다. 이물감. 내 것이 아니라는 배타성. 그러면서도 화자는 이 모든 죄와 잘못은 자신 혼자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꽤 씁쓸한 소설이다.

 

저문 날의 삽화2

“그 사람(운동하는 남자)이 가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생각해봐. 소위 민중을 위한다는 친구가 여성처럼 오랜 세월 교묘하게 억압받고 수탈당한 큰 집단이 민중으로 안 보인다면 그를 어떻게 믿냐? 저는 남자의 기득권을 안 내놓으려 들면서 권력자의 기득권은 내놓으라고 외치는 것도 가짜답고, 도대체 제 계집을 종처럼 다루면서 일말의 연민도 없는 자가 민중을 사랑한다는 소리를 어떻게 믿냐.”(1991년 작품집)

운동권이었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들로 인해 윗집 제자의 남편을 역성들며 시어머니로서의 며느리를 대하는 방식으로 제자를 대하던 화자는 결국 그 제자와 자신이 같은 입장이라는 걸 깨닫는다.

 

저문 날의 삽화3

“남편은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던 것에서 눈길을 돌리면서 입을 벌려 웃었다. 틀니를 아직 끼지 않은 분홍빛 잇몸 때문인지 문득 남편이 천치처럼 보이면서 나는 내던지듯이 (허물어지기 직전의)담장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중산층의 위선 의식과 하층민에 대한 시혜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여실히 꼬집음.

 

저문 날의 삽화4

성묫길 관절염을 느낀 화자. “그 기분 나쁜 동통이 여태껏 무의식적으로 순종해왔던 것에 대한 단순하고도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생전에 소매 한 번 스친 일은커녕 동시대의 공기를 더불어 호흡한 일조차 없는 완벽한 미지의 사람들을 내가 공경할 의무가 있음은 그들이 남편을 있게끔 했기 때문이거늘 나를 있게끔 한 내 조상에 대해선 어째서 남편이 공경의 의무를 지려 들지 않는가.”

명절에 대한 세대 간의 시선 차이. 부부에게는 비장하고 엄숙하기만 한 ‘자유’는 그들에겐 한낱 자동차이다. 결국 자동차를 장만한 남편. 기계 조작에 소질이 없지만 자유를 향한 그의 갈망은 젊음을 향하는 마음 못지않다. 엄격한 가부장주의자인 남편에 대해 반발심을 갖고 있지만 그러나 화자는 같은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지이기도 하다. 그 자동차가 고장 나고 뒤에서 밀고 가면서 오히려 자유를 느끼는 화자. 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무능한 노인들의 방식으로 제 맘대로 되고 있다는 안도감을 불러일으킨 것.

 

저문 날의 삽화5

여유 있는 노년의 귀촌. 그들을 사로잡는 건 풍경과 도시 같지 않은 사람들의 성향. 옆집 아이까지 자진해서 봐주는 부부. 그러나 막상 멀리 사는 자식의 사고 소식을 접함. 아름답게 저문 날도 평탄하지만은 않음을.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전쟁과 유신을 거쳐온 사람들. 과거의 복원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미화시키거나 유리한대로 하고자 하는 후대. 그대로 복원하는 걸 두려워하는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 그러나 작가는 그런 비겁함이 못내 애달프다.

 

家(가)

“성구의 생각이 집 문제에 걸렸을 때 불현듯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어젯밤 어머니가 뵙고 자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가 아니었다. 그는 시방 외할머니를 보고 싶은 거지 뵙고 싶은 게 아니었다. 우리가 보통 웃어른을 뵙는다고 할 때의 아랫사람으로서의 예절이나 조심스러움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오직 짓궂은 궁금증, 적나라한 호기심이 전부였다. 드디어 집도 절도 없어진 외할머니는 어떤 꼴을 하고 있을까. 외할머니의 집에 대한 집념, 집 가진 세도가 외가 친척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걸 알고 있는지라 더욱 외할머니가 참담한 웃음거리로 여겨졌다.”

보리밭의 상징이 매우 유쾌하다. 외할머니 내외가 따로 방을 쓰지 못하던 시절 보리밭에서의 정사로 딸 둘을 낳았고 첫 딸이 화자의 엄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다부지게 버텨내는 외할머니의 성정. 유세를 떨던 집을 잃고 딸네 집에 와서 하필 금비녀를 잃어버린 곳이 아파트의 텃밭 같은 보리밭. 산발을 하고 비녀를 찾는 외할머니의 참담한 최후를 은근히 기대하던 화자는 어린애처럼 활기를 잃지 않은, 그러나 집을 잃어 삶의 무게는 오히려 가벼워진 외할머니를 번쩍 안아올린다. 제목의 ‘가’는 집과 더불어 아들로 인해 가정을 유지하려는 우리네 억척스러운 어머니들의 집착을 상징한다.

 

우황청심환

상처를 직시하기. 가치 떨어진 우황청심환과 한약재를 팔러 온 연변의 친척. 우황청심환은 그의 어머니의 죽음과, 연변이라는 지역은 운동권이 되어 부모와 의절한 아들과 맞닿아 있다. 돌고 돌아 부부는 자신들의 상처를 직시하지만 그 상처의 근본에는 다다르지 못한다.

 

엄마의 말뚝3

“어머니의 혼수 상태는 길어지기만 했고 어쩌다 하는 헛소리도 워낙 기진한 데다 혀가 굳어 점점 알아듣기 어렵게 됐다. 짐작으로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내가 죽었냐? 살았냐? 하는 말밖에 없었다. 그 말은 임종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침울한 분위기에 장난스러운 팔매질처럼 파문을 일으켰다. 염치없지만 유쾌한 파문이었다. 식구들은 잠시 긴장을 풀고 킬킬댔다.”

북한이 고향이었던 어머니의 향수병. 강화도 바닷길을 통해 죽은 뼛가루라도 고향에 닿길 원했던 어머니의 유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단으로 인한 노인들의 향수병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는 그에 더해 죽음마저도 실용과 치레에 치중한다.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혹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패러디인가?)

죽음을 앞둔 남편. 항암 치료 중. “그가 선택한 인간다운 최선은 가장 아까운 시간을 보통처럼 구는 거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에게 순간순간 열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 부부에게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열 달이나 계속됐다.”

뇌 씨티를 찍으러 간 병원에서 맞닥뜨린 노사분규. 억압 당하는 쪽, 못 가진 자를 편들어왔던 화자는 병원노동자들의 권리행사에 분노함. 그때에는 그들이 막강한 강자로 보임. 목청 높은 가해자(화자와 화자의 남편에게)이며 약자인 그들. 개인과 시스템의 충돌. 신혼의 달콤함을 채워주던 도구였던 모자(유일하게 화자가 해간 혼수이니만큼 자존심이기도 함)는 결국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을 잃은 남편의 말년, 그러나 가장 생에 충실한 때를 장식해준 것이기도 함. 윤흥길의 모자는 자존심이었다면 이 소설의 모자는 자존심과 더불어 생에 대한 화려한 달관임.

 

해설(박혜경)

계층과 세대의 본질적 한계. (한계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만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 그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한 바탕 위에서 그 한계와의 싸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끊임없는 자기 반성적인 노력. 작가가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것은 각 인물들의 상이한 계층적 삶의 내용을 규정짓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그 계층적 삶을 뛰어넘어 인간의 삶의 양식을 본질적으로 규정짓는 보편적인 존재론적 문제들임.

신판 해설(김치수)-젊음과 늙음의 아름다운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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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