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창비 내가 읽은 책2019. 10. 10. 16:27
세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장편소설을 첫 번째 파트,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어떤 익숙함을 느꼈다. 내 여자의 열매. 결국 식물이 되어버린 어느 여성을 그렸던 작가의 오래 전 소설이었다. 해설에 나왔듯이 '주의'는 신념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제목은 패러디로 볼 수도 있겠다.
세 편의 소설은 모두 영혜의 이야기지만 화자를 영혜로 하지는 않는다. 영혜의 주변 인물 세 명을 통해 영혜는 상대에 따라 다르게 그려진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열정의 대상, 트라우마의 화두. 채식을 한다는 건 보편적인 인간들이 따르는 법칙을 따르지 않는 인물을 상징한다. 그 누구에게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비난과 조롱과 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해설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나 역시 그녀, 영혜의 언니를 보며 가장 가슴이 아팠다. 모든 짐을 지고 살며 타인을 보살피고 질서를 지키는 삶. 그것이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는 걸 그녀는 영혜를 보며 깨닫는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무질서한 사람이 그녀는 부럽다. 그렇지만 그녀는 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결코 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시도조차 죄의식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굳이 페미니즘 소설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읽었을 때 영혜라는 인물은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의 정당성에 반기를 든 인물이다. 그들의 질서는 영혜에겐 공포다. 영혜는 그들의 질서가 없는 세상으로 그 자신을 이동(죽음)시킨다.
예상보다 파격적인 이야기였고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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