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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묻다

 - 새로운 인생

 세 번째 파묵을 읽었다. 내 이름은 빨강, 하얀 성. 전에 읽은 두 작품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명예에 손색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다. 현학적 사유를 서사로 풀어나가는 능력, 그것은 훌륭한 소설가의 것이라 나는 믿는다. 이 작품 역시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소설 중반까지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황당한 우연의 연속, 납득이 가지 않는 인물들의 행동, 인물들이 심취해있는 대상에 대한 모호함. 소설은 중반을 훨씬 넘어서 후반부에 들어가서야 그것들의 비밀을 밝히기 시작한다. 아, 그제야 알아채는 이 우둔함이라니. 그렇게 사방에 깔려있는 복선이라니.

 책 한 권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러나 작가는 결국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우연인가. 그것은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과거의 영광이 찬란하였던 데 비해 터키는 서구의 기준에서 후진국에 가까운 나라다. 경제적인 지표도 그렇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그런 서구의 문화 식민지 정책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과 무조건 배격하는 이들, 작가는 정답을 쉽게 내놓지 않지만 결국 제3의 인물을 통해 말을 내뱉고 만다. 물질을 지키는 것으로는 고유의 문화를 지킬 수 없음을, 정신을 향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그러나 그 인물은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배경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우연을 그저 우연으로만 치부하고 산다. 그러나 진실 앞에 우연은 필연이 된다. 그 탐색의 과정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것. 더불어 인간에게 진짜 '새로운 세상'은 죽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 이렇게 짧게 요약하는 것이 다소 무모할 지라도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인지한 점이다.

 아쉬운 건 번역이었다. 주술관계, 조사, 등 기본적인 한국어 문법에 소홀한 번역이라니. 작가의 문체를 음미하는 건 바라지도 않았건만. 역자가 쓴 책의 해설은, 매우 일반적 평이었고 크게 흠 잡을 데는 없었음에도, 신뢰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파묵은 계속 읽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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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