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내가 읽은 책2018. 6. 20. 21:14
1. 세실, 주희-박민정
매우 복합적인 소설이다. 개인과 집단, 횡과 종을 아우르는 서사는 그러나 매우 차분하게 진행된다. 개인이 가진 권력은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는가. 무지와 게으름은 순전히 개인의 탓인가. 문화란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폭력일 수도 있다는 것. 원망과 질투와 동경의 너무나 가까운 거리.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얄팍한 권력을 가진 인간의 잔인한 성정이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보통의 인물을 내세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2.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임성순
예술과 자본의 이야기. 자본에 종속되는 예술, 예술을 빌미로 한 자본의 자기 증식과 자본 이상의 가치. 분명하고 저돌적이다. 매우 흥미로운 서사임에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전형성 때문인 듯하다. 적당히 속물적인 소설인데 나는 도통 이런 남성형의 속물성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3. 그들의 이해관계 - 임현
작년에 읽은 '고두'와 같은 맥락에 있는 소설로 읽힌다. 인간의 행, 불행이 균형의 관계일까.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 어느 개인에게 득과 실이 되는 것 역시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걸까. 어쩌면 빼앗아야 살아남는다고 생존의 방법을 잘못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또 어쩌면 단순히 질투의 문제이기도 한가. 이런 질문들 속에 작가는 인간의 이기심과 부끄러움의 문제를 냉혹하게 끼워넣었다. 결국 인간은 반성을 하더라도 이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시선, 그러나 결국 그것이 인간이라는 체념 혹은 인정. 작가의 질문은 답보다는 질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4. 더 인간적인 말 - 정영수
더 인간적인 말이란 무엇일까. 진심을 담은 말? 휴머니즘에 입각한 말? 사람을 논리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말? 그저 제 자신에게 충실한 말? 그렇듯 이 소설은 명확함 속에 불명확함을 잔뜩 배치해두고 있다. 말이 많은 부부가 말로 설득되지 않은, 이모의 존엄사에 대한 선택을 두고 더 인간적이라고 느꼈으리라 여겨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제목은 왜 '더 인간적인 말'일까.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는 와중에 놓치는 수많은 것들을 '인간적이지 않음'의 틀에 놓아두는 게으름을 스스로 허용하는 게 아닐까. 조금 더 치밀했다면 더욱 매력적이었을 듯한 소설. 이모의 죽음의 선택 방식에 구구절절한 사연이 붙지 않은 건 좋았지만 이모에게 너무 무게가 실리지 않은 느낌이 든다. 내게도 유효한 주제라서 생각이 많아졌다.
5. 가만한 나날 - 김세희
착한 소설이다. 제목은 흐리다. 자본의 알고리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무심함의 폭력, 반성, 인간예 대한 예의를 주장한다. 광고대행사로 포장한 블로그홍보의 문제점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 행태는 너무 익숙하다. 어쩌면 플롯의 문제일까. 독하게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순하고 식상해서 지루하다.
6. 한밤의 손님들 - 최정나
회화적 소설이라는 평을 보았다. 나는 부조리극처럼 보였다. 메타픽션의 형식을 빌린. 내내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오른 건 분명히 우연은 아니다. 비평가처럼 분석할 수도, 필요도 없지만 평이 작품보다 더 아쉽다. 희망도 의욕도 없는 속물적인 인간들, 뻔한 관계들이 진행하는 도돌이표 같은 대화들. 인상 깊었다.
7.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 박상영
이 소설은 실패한 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다른 관점이 있다. 소수자성. 이 소설의 소수자성은 기존에 반복되어 발표되던 소수자성과 다르다. 정체성만으로 설명되던 소수자성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고 있는 그저 수가 적은 부류의 인간일 뿐이다. 소수자를 그릴 때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시선을 경계해야 하는 건 최근의 화두이지만 이전부터 꾸준히 이야기되어오던 바이다. 조금만 문장과 이야기를 절제했다면 조금 더 빛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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