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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지독한 굴레

- 피아노 치는 여자

 

이 소설의 겉 스토리는 단순하다. 딸을 소유로 여기며 집착하는 엄마와 그렇게 길들여진 딸의 극단적 성향. 이 둘의 상관관계는 지독히 상호적이면서도 일방의 폭력이 지속된다. 그들이 그 굴레를 끊을 수 있을까?

 

넓게는 페미니즘 소설에 속하겠지만 굳이 그렇게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구호도 없고 변명도 없이 문제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만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어미의 딸에 대한 소유욕은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다. 어미의 욕망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지를 위한 수단이자 목적, 그리고 남편과 맺지 못한 관계에 대한 대리만족, 더불어 지배욕 혹은 통제욕의 실현. 그렇기에 딸이 어미에게 부응하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오만하면서도 비법하고, 어미를 범하려는 시도 등 패륜과 빗나간 성애를 보이며, 가학과 자학을 극단적으로 오간다.

 

결코 재미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숨이 막히고 고통스럽다. 모녀로서의 경험이 있다면 내면의 날카로운 울림마저 감내해야 한다. 게다가 지적이고 문장 하나하나가 힘을 주어 꿈틀거린다. 결국 스스로 다시 진창으로 돌아가는 모녀. 두 사람의 폐쇄적인 삶은 다른 방식을 선택할 줄 모른다.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들어간다면, 여성이 무언가를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건 '어미'가 되어서야 가능하다. 억눌린 지배욕은 더욱 은밀하고 폭력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지배 받는 딸의 입장이 되면 세상의 경멸적인 시선과 욕구를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 등은 결국 여성을 남성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만들거나 파멸로 이끈다. 이 소설에서 나온 남성은 소설적 인물로서의 가치는 적다. 그 전형성과 두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으로만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는 기득권이고 사회로부터 지배력을 부여받은 '남성'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저 젊은 남성으로 그려진 건 그의 얄팍함이 젊은 남성에게 만연하기에 더욱 일반화된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위험하고 절망적이다. 고통스럽고 잔인하다. 그러나 생생히 살아있는 문제의식과 질문. 논란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는 서사 방식. 내가 매우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이다.

 

덧붙임.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문체의 힘이 대단하다. 인물의 캐릭터와 달리 문체는 매우 지적이고 고급스럽다. 번역자가 애를 많이 썼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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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