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 마거릿 애트우드, 김선형 옮김, 황금가지 내가 읽은 책2019. 2. 26. 18:07
여성 혐오의 디스토피아
- 시녀 이야기
알레고리 소설이다. 굳이 SF 장르에 넣어도 문제는 없지만 이 소설은 정확히 알레고리다.
먼저 배경 설정은 이러하다. 방사능을 포함한 각종 환경 오염 물질로 기형아 출산률이 높아진 세상에서 출산률 자체가 급격히 하락한다. 기회를 노린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세상은 극한 통제의 장으로 바뀐다. 권력을 가지고 있던 남자들은 정자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하며 여성들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녀와 그렇지 못한 잉여인력으로 분류된다. 여성은 이 세계에서 2등도 못되는 시민인 것이다.
감시와 통제 아래에서 시녀(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로 분류된 화자는 제 운명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럼에도 통제의 빈틈을 노린 수많은 예외 상황에 처하면서 사람으로서의 욕망이 되살아난다. 존중 받고 싶은 욕구, 성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그 중 가장 크다. 담배 한 개비로 발현된다는 점에서 모든 욕망은 서로 연결된다. 저항 세력이 있지만 이 소설에서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시녀로서 화자는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구가 있다. 통제되는 세상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체제 속에 안착하고 싶은 화자의 욕구는 결국 엇나갈 수밖에 없다. 아이를 가지는 일이 소설 속 세상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항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셋이다. 화자의 엄마는 전 세대의 인물로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 그러나 체제가 바뀌면서 극한 노동에 시달리며 살게 된다. 인간을 '쓸모'의 기준으로 가치를 삼는 전적인 예이다. 화자의 친구인 모아나는 가능한 한 모든 상황에 저항을 하며 탈출을 해내지만 결국 체제의 '창녀'가 되어 사라지고 만다. 이중 생활을 하는 닉은 체제에 순응하는 남자이면서 은밀히 저항 세력의 활동을 한다. 결국 닉은 위기에 처한 화자를 빼낸다. 빼낸다는 것이 탈출인지 처형인지는 알 수 없다. 닉의 정체성 자체가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통제의 수단으로 '문자'를 제거한다는 사실이 매우 유의미하다. 생각하기를 금지하는 것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체제에 순응할 수 없다. 그러나 화자는 문자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성정 자체는 저항적이지 않지만 욕구가 강한 사람은 결코 무탈하게 견뎌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대단히 재미있으면서 심도 있는 소설을 잘근잘근 오래 씹어먹었다. 마거릿 애트우드를 이제야 만난 게 원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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