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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6. 20:21

서울 - 손홍규, 창비 내가 읽은 책2018. 11. 26. 20:21

디스토피아에서 카오스로

 

- 서울

 

이 소설은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의 진행이 아니다. 디스토피아에서 카오스로의 진행이다. 그래서 매우 혼란스럽고 어둡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알레고리이다. 설명되지 않은 재난 이후를 그린 상황이다. 서울은 파괴되었고 전쟁의 흔적도 보이며 그 와중에 출현한 짐승(혹은 괴물, 좀비라는 단어는 소설 말미에 딱 한 번 등장)은 인간을 먹잇감으로 노린다. 인간들마저도 서로를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다. 어쨌건 디스토피아이다.

 

한 번 읽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작정하고 두 번째 정독을 하면서도 '대체 왜'라는 물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작가는 짐승의 행태와 습성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그들은 낮을 지배하는 자이다, 그러나 소설 중반 이후 밤에도 출현하는 경우가 있다, 진화인지 돌연변이인지조차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짐승이 왜 인간을 노리는지(먹기 위한 건지, 종족 번성을 위한 건지, 살생의 본능 때문인지)도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짐승은 왜 낮에만 활동하는지, 밤이 왜 짐승의 약점이 되는 것인지, 헬멧을 쓰는 행위는 짐승임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낮의 지배를 줄이려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은 총에 죽는 건지 아니면 그로 인해 충격만 받는 건지 짐승은 왜 인간을 강간하여 수태하게 만드는 건지, 그렇게 태어난 혼종의 생명은 어떤 생명인지(주요 인물인 여자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죽은 남편의 아이로 잠시 착각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빨리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는 설정조차 없었다), 결국 카오스를 선택한 소년은 왜 스스로는 죽음을 선택하는지,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질문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작가가 못 써서 이런 부분을 드러내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선문답 같은 대화도 그렇거니와 그런 게 뭐가 중요하며 결국 모두에게 혼란의 디스토피아인 세상이 아니냐며, 작가는 조금의 친절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소년의 증오가 오롯이 작가의 것으로 느껴진 데에는 이런 이유가 컸다.

 

결국 시 때문이었을까. 답은 시에 있는 걸까. 그 시는 결국 노래하는 자의 것일까. 좀비의 세상을 그렇게 낙관할 수 있을까. 작품 속 인물들은 그렇게 믿어서가 아닌,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시에 대한 고뇌가 아름답게 그려지면서도 결국 지옥을 말하고 있다는 건 작가 역시 그러한 믿음을 한 톨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알레고리 소설이지만 장르소설로도 메타픽션으로도 읽히는 이 소설이 어떻게 읽히든 내가 무슨 상관이냐며 비웃는 작가의 얼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소설을 쓰던 당시 작가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었을까. 모든 걸 혐오하면서도 끝끝내 작가적 책무 한 자락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저 막연히 짐작해본다.

 

읽기 무척 힘들었다.

 

추가. 결국 소년의 새로운 서울은 좀비의 세계이다. 소년은 좀비를 보며 아비를 연상한다. 근력 하나의 자부심으로 무지와 무례와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존재. 물론 그런 아비에게 아주 조금 느끼는 연민은 소년이 지향하는 궁극이 아니다. 모두 아비처럼 그저 본능대로 살아가기만 한다면, 고민이 없다면 차라리 나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지혜롭고 책임감 강한 노인을 좀비의 세계로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비로 개체가 변화되는 노인이 좀비의 특성을 넘어설 수 있다는 장담은 없다. 더불어 소년 패거리를 집요하게 쫓는 짐승이 혹시 좀비로 화한 아비가 아닐까 궁금했지만 역시 불친절한 작가는 조금도 힌트를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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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