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 43장 - 이기호, H 내가 읽은 책2018. 11. 5. 12:26
그들은 고통을 어떻게 은혜로 승화시켰는가
-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욥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고통을 딛고 신의 뜻을 알게 되는 욥. 그러나 작가는 정말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성경이 모티브가 되는 소설은 반역적이기 마련이다. 작가 역시 의문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 욥은 자식을 잃었을 때보다 자신의 몸이 고통스러웠을 때 자성을 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어쩌면 과정일 수도 있었으나 다르게 보아 인간의 내재적 이기심을 통찰한 것이다. 여기에 그쳤다면 이 소설은 심심할 수도 있었다. 진정한 반역은 순수한 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 속에 숨기고 있다.
욥의 현현인 최근직 장로. 전형적일 수도 있었으나 이기호 작가가 그리 만만한 작가가 아니다. 그의 냉정함과 영악함과 속물주의가 소설 곳곳에서 나온다. 가장 재미 있었던 표현은 그를 높이 평가한 입에서 '베드로'라는 인물이 나온 것이다. 돈에 팔려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예수의 수제자. 그러니 최근직은 욥과 베드로가 결합된, 매우 입체적인 캐릭터인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욥은 최근직의 아들인 최요한일 수도 있다. 절대자는 신이 아니라 최근직인 것이다. 그의 위력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실패한 욥, 최요한. 그에게는 희생될 자식조차 없었으니 그의 파국은 당연한 결말이다.
모든 인물이 입체적이다. 자신의 신념, 정의를 주장하는 인물들은 알고 보면 제 이익 앞에서는 신념과 정의를 무시하기 일쑤다. 그것이 그들에겐 신념이고 정의이다. 다른 인물을 묘사하는 인물들의 생각을 들여다 보면,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 이 소설 안에서 인물을 평면적으로 만드는 건 결국 시선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굳이 말하지 않지만 이 소설의 방화는 어쩌면 우연이고 어쩌면 예견된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거대한 음모나 배경이 깔려있지는 않다. 그저 모든 이들의 욕망이 부딪히고 산화하는 가운데 발생한 발화열 같은 것이다.
이기호는 정말 이 소설처럼 입담이 좋은 사람일까. 읽다가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른다. 낭비하지 않는 문장 속에 적절히 배치된 해학. 그럼에도 이 소설은 조금 아쉽다. 신(절대자, 권력자)를 향한 인간들의 욕망이 조금 더 교차된 구성으로 심화되어 나왔다면 언뜻 느껴지는 가벼움이 부족함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래도 이기호는 참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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