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관한 단상, 마돈나
- 인물로 보는 폭력에 대한 여러 가지 모습
이 영화는 이 사회에 난무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그려내고 있다. 창작자에게는 영원한 화두가 되는 '폭력'에 대해 감독이 가진 시선을 들여다 본다.
먼저 주인공인 마돈나. 할머니와 둘이 사는 마돈나는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 소심하고 조용한 인물이다. 저항할 줄 모르며 타인의 친절에 쉽게 감화된다. 여성이며 빈민층인데다 비만한 마돈나는 폭력의 카테고리 안에서 최약자로 설정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돈나를 향한 주변인들의 거침 없는 폭력은 폭력이 흐르는 방향을 정확히 알려준다.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향하게 마련인 폭력에 번번이 노출되는 마돈나는 나름의 저항을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큰 폭력으로 돌아온다.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는 마돈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안전함만이 유일한 목표인 그녀는 목숨마저도 강한 자들에 의해 유린되고 만다. 그녀가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단 하나, 뱃속의 아이. 그녀는 말한다. 사랑 받아보지 못했지만 아이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강간에 의한 임신임에도 아이가 소중했다고. 그것은 가치지향적으로 보이기보다는 결핍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임신한 몸으로 찍은 웨딩드레스 사진이 무척 아름다웠던 걸로 보아 감독은 이것을 미화하고 싶었던 듯하다.
재벌 회장의 아들. 돈을 위해 어떤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폭력을 행하는 위치에 서있지만 이 역시 사랑 받아본 적이 없다는 설정으로 결핍성을 드러낸다. 결핍으로 드러나는 간접적인 폭력의 피해자인 셈인데 그런 자에게 주어진 부는 지나치고 결국 폭력성으로 재발현된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폭력의 상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그 누구도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정도를 보여주었는데 그 방식이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젊은 의사. 의사로서의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거부한다. 그러나 폭력에 맞서기에는 그는 비겁하다. 종합병원의 의사로서 어쩌면 수직관계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중층부 이상의 위치에 놓은 그도 부와 권력 앞에서는 한낱 초라한 개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에 아기를 살리자는 제안을 한다. 윗선의 허락이 없었다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그저 수긍하고 말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가장 보통의 인간 유형이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혜림. 그녀에 관한 정보는 아이를 낳아 유기한 적 있다는 정도다. 남에게 무관심한 듯 보이던 그녀가 마돈나의 행적을 끝까지 쫓았던 이유는 바로 아기이다. 죄의식. 그녀의 스토리는 알 수 없지만 그녀 역시 어떤 폭력의 최하위층에서 치떨리는 경험을 했다는 정도는 관객들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역시 '아기'라는 공통점으로 인한 죄의식은 너무나 많이 쓰였던 소재여서 식상했다. 텅 빈 듯한 그녀의 두 눈, 그럼에도 끝없이 마돈나를 뒤쫓는 그녀의 집착은 다소 개연성이 부족해 보였다.
결국 아이는 태어난다. 아이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폭력의 양상은 끔찍함 이상이다. 혜림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젊은 의사는 아이의 팔에 이름표를 붙여준다. 여기서 나느 가장 큰 의문이 들었다. 아이를 끝까지 낳고 싶어했던 마돈나의 심리는 차치하고, 두 사람의 행위에 어떤 해석을 붙일 수 있을까. 휴머니즘? 도의? 그렇다면 이건 너무나 식상하고 안일한 결론 아니던가. 혜림은 그걸로 자신의 죄갚음을 하는 대리의식을 치른 것이고 젊은 의사는 마지막에 겨우 의사로서의 양심을 지킬 수 있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였을 뿐이다. 이에 대해 거창한 이름표를 붙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시스템이 미비한 이 사회에 무방비로 던져질 것이 분명하므로. 그 어떤 대책도 영화에서는 짐작할 수 없었으므로.
또 하나. 극 중 혜림은 마돈나에게 묻는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인데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아이냐고. 이 직접적인 질문에서 나는 감독의 조바심을 보았다. 인간의 가치는 그렇게 간단히 정해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 같은 건 영화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관객에 대한 불편한 입장을 드러낸 감독의 말이 여러 사람의 공분을 사고 있는데, 난 이 장면에서 정말로 관객을 무시하지 않고 만든 영화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여러 비판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 아래로 흐르는 폭력에 대해 비껴가지 않고 그려냈으며 그 와중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라는 건 함부로 남이 재단할 수 없다는 주제였다.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다음 영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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