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자신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거짓말
- 리플리
리플리 증후군의 어원으로 알려진 영화다.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 연쇄성에 대해 살면서 여러 번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위기를 모면하려는 임시 방편, 혹은 영화처럼 초라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선망하면서 욕망의 대상에 자신을 투영시키는, 즉 자신을 거짓 표지로 장식하려는 욕망. 영화에서는 살인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이런 연쇄적인 거짓말은 타인을, 결국 자신마저 곤란에 빠뜨리게 된다.
리플리 증후군 자체에 대해 공부를 한 적은 없다. 그저 나 혼자 생각해 본 바를 풀어보자면, 남을 속이는 유형, 그리고 자신까지 속이는 유형이 있다. 그 사이의 경계는 애매모호하다. 실지로 자신의 말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개의치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동기만큼은 '욕망'으로 일관된다. 욕망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도덕적 결함이 문제가 된다. 그들은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은 충분히 그럴 만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도. 머릿속에서는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알고 있지만 가슴 속에서는 부정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리플리는 자기 자신을 속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럴 만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정당화한다. 이 영화의 여운이 길게 남는 이유는, 전형적 악인 리플리가 단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계속되는 거짓말의 와중에, 거짓말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회고하는 장면을 시작과 끝에 배치했을 뿐이다. 아주 작은 계기다. 하류층인 리플리가 우연히 얻어입은 명문학교의 재킷. 그로 인해 그를 다르게 평가하는 세속의 시선. 다른 대우와 시선을 느낀 리플리의 욕망은 어쩌면 너무나 작은 것으로부터 출발했던 것이다.
타인의 조건에 따라 함부로 평가하는 일의 그릇됨에 저항하기보다는 그 조건을 위조하는 방법을 선택한 리플리에 대해 어쩌면 나는 동정심을 갖고 있다. 영화 내내 상류층들에 의해 무시 당하는 그를 보며 어떤 종류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 분노의 발화 방식이 리플리와 내가 다른 점일 뿐인데 이렇게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고 만다.
인간을 탐색하는 이런 류의 영화는 특히 내게 많은 생각을 남긴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 이 영화는 아주 재미 있다. 스토리라인도 제법 흥미롭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고민을 남겨주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다시 한 번 인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배우들이 너무 젊다, 했더니 역시나 리메이크작이었다. 원작은 조만간 찾아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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