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 - 강화길 소설, 문학동네 내가 읽은 책2018. 4. 9. 18:46
불안한 사람들의 어떤 삶의 이야기들
- 괜찮은 사람, 강화길
1. 호수-다른 사람
재독임에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어쩌면 재독이어서였을 것이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진영의 불안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오롯이 진영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젖어들어 그 심각성을 모르는 폭력의 문제. 흔히 가스라이팅이라 부르는 걸 감각적으로 느끼는 진영. 사실 여부에 관계 없이 불행을 불러오는 너무 많은 흔적들에 세심하게 반응하는 진영에게 보통은 '너무 예민하다'고 한다. 예민하고 불안한 진영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독자의 상상에 맡겼으니, 내 마음대로 생각해보자면, 그에게 진실을 묻는 것. 이렇게 결론이 나면 소설은 시시해지겠지만.
2.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
귀한 사람으로 취급 받고 싶은 욕망. 그저 사람으로 취급 받는 걸 넘어선 건 시대가 변함에 따른 것일 터. 그 욕망은 흔히 드러나는 표식에 집착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흔히 간접화된 욕망이라 부르는 문학적 이론이 이 소설에 여실히 적용된다. 그러나 다르다. 화자는 목표로 한 욕망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체 강화길은 왜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가. 작품에서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경박한 호기심이 사라지질 않는다.
3. 괜찮은 사람
보는 사람 혹은 겪는 사람에 따라 같은 상황은 다르게 해석되기 마련이다. 독자들의 오해를 사도록 구술한 문단을 작가는 곧바로 바꿔버린다. 그러나 한 번 시작된 의심을 독자들은 멈출 수가 없다. 내내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시 화자에 이입된 불안과 불편일 뿐이다. 알고 있는데도 독자들은 스스로 속는다. 결국 독자들은 화자에게 배신 당한다. 어쩌면 소설 속 화자는 그 스스로를 속인 건지도 모른다.
4. 벌레들
내겐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다. 세 명의 관계. 힘을 가진 자와 연대하는 자 사이의 균형은 쉽게 흐트러진다. 불안이 극에 달한 이들의, 얄팍하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한 행위들을 보며 숨이 막히기까지 한다. 불안할 뿐만 아니라 외롭기까지 한 이들은 관계를 원하지만 그 관계를 유지시키는 적정한 선을 모른다. 적대와 연대의 교차는 그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파국으로 결론이 난 더욱 위험하고 불안한 관계가 계속 유지될 거라 믿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5. 당신을 닮은 노래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조금 덜 강화길스러웠는데 결말에서는 역시 강화길답다.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도 무엇가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들 모녀 역시 불안한 사람들이다. 삶의 고통과 빈곤을 잊기 위한 술수기에 그들은 더욱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진실의 배반. 이후를 작가가 보여주지 않았지만 이 소설의 인물들이라면 역시 또 자신을 포함한 상대와 모두를 속이며 살아가지 않을까.
6. 방
두 여성의 이야기. 퀴어적 소재지만 퀴어에 한정되지 않은, 불안과 욕망으로 인한 파멸을 잔인하게 그린 하드코어한 작품이다. 앞의 작품에서도 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한, 버려진 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욱 철저히 버려지고 고립되어 있기에 이 작품의 배경은 더욱 음산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 적은 게 오히려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7. 눈사람
버려진 아이 콤플렉스. 다른 작품에 비해 평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살려는 몸부림을 치는 노파와 소년. 노파도 자식으로부터 버림 받았을 거라는 쉬운 상상을 해본다. 성인이 된 소년은 아직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사회복지사를 또 찾는다. 그는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는 걸까. 그에게서 구원을 바라지도 않는, 성인이 된 소년은 현재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는지, 불친절한 강화길은 힌트조차 주지 않았다.
8.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
환경으로부터 떠밀려난 쿨 말리크 커플과 이젠 더 이상 연인이 아닌 화자 커플. 한때는 사랑했던 연인들에게 쌓이는 오해들로 멀어진 거리는 다시 가까워질 수 없다. 참고 넘기는 게 관계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단순한 명제도 추출해낼 수 있지만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처럼 실상의 관계들은 불합리하고 불안한 미지의 세계라는 것. 관계처럼 그 관계가 이어지는 일 또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낯선 길 같은 것. 그래서 굴 말리크는 무엇을 남겼을까. 당연히 강화길은 말해주지 않았다.
강화길의 소설은 대중적 인기가 높을 분위기는 아니다. 어둡고 불명확하고 냉소와 독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내 취향이다. 지켜볼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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