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호텔 뒤락 - 애니타 브루크너, 김정 옮김, 문학동네

박모모 2016. 9. 29. 22:05

허구와 현실의 경계 없는 되비침, 그 속의 여성들

 

- 호텔 뒤락

 

읽으면서 내내  흥미로웠다. 전형적이고 답답한 인물들, 한정적인 공간,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이끌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의 다 읽고 나서, 겨우 이건가, 싶었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고른 후 해설을 읽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소설은 쉽게 읽으면 재미없고 어렵게 읽으면 재미있다는 것이다. 놓친 설정 때문에 아쉬웠고 그래고 그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이 소설은 배경과 인물이 한 몸인 듯 전근대적이다. 보수적 기준을 지키느라 오히려 특징이 없어진 호텔, 주인공 외엔 내내 조금도 변하지 않는 석고상 같은 인물들. 그 안에서 유일하게 변화를 겪어내는 이디스 역시 (비록 로맨스소설이지만) 작가답지 않게 답답한 사고에 갇혀있었던 인물이다. 그의 글쓰기 행위는 소설과 편지로 나뉘는데 소설에서는 자기 반성이나 성찰을 담보로 하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진 로맨스만을 고집한다. 그러나 (결국 부치지 않는) 편지에는 현실의 관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깃들어있다. 현실과 허구를 구분해버린 작가, 그 보수성은 행복하지 않았던 원가족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그렇게 대상 독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소설이 그가 여러 가지 문제에서 자립할 수 있게 만드는 원천이라는, 즉 현실적 기반이다. 이 소설 전반에 이런 식의 교묘함을 나는 쉽게 깨닫지 못했다. 그저 전형적 인물과 주인공과의 관계에 중심을 둔 읽기였다는 게 나의 독서력이 아직도 형편없음을 입증한다.

 

주인공이 버지니아 울프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면서도 글쓰기를 위한 현실적 기반은 남편에게 두었던 작가이다. 주인공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 대척점에 있다고 봐야 할 인물이다. 그렇듯 현실과 허구가 괴리된 인물 정도로 파악했는데 해설에서는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진정한 독립인가 하는. 아마도 작가가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했던 인물이기에 가능한 질문이었으리라. 현실에서 무력한 여성 작가들 전반을 작가가 이해하기에 무리였을까. 소설의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점이 아쉽고 섭섭하다.

 

관계에서의 의존성, 사회적인 이미지,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잘못 배운 이들. 호텔 뒤락의 대부분의 인물들처럼 흔하고 흔하다. 그 안에서 성찰은 오롯이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어떤 철학적 고뇌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성찰을 얻어냈다는 데에 나는 이 작가의 철저함을 엿본다. 자신의 지식을 소설 속에 함부로 드러내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인물들에게 작가가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최소한의 변명거리(소설 속에서는 너무 구질구질해서 연민이 안 생긴다)조차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함부로 얘기하자면 이 작가가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혐오와 냉혹함이 사실 내게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이 작가의 태도가 더욱 걸렸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은 자꾸 생각날 것 같다. 더 하고 싶은 얘기는 후에 다시 덧붙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