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혀끝의 남자-백민석 소설집, 문학과 지성사

박모모 2015. 1. 9. 15:32

작가를 들여다보다, 혀끝의 남자, 백민석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란 작품집을 통해 백민석은 내겐 인상적이고 놀라운 작가로 기억되고 있었다. 딱 그 정도였다. 우연히 그가 신작소설집을 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무려 1년도 더 지난 시점이었다. 소설집 안의 신작은 두 편뿐이었다. 괜찮았다. 다른 작품 역시 읽지 않은 것이었다.

 1. 혀끝의 남자

 인도 장기체류자들의 이야기이다. 당연히 배경은 인도이다. 작가는 왜 굳이 인도를 배경으로 해야 했을까.

 소설 속 인도는 혼란과 질병과 난립하는 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 차별과 가난과 불신이 그득하다. 그것이 인도를 현실적으로 담아내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신에 대해 질문하고 있으므로.

 힌두교의 영향으로 어느 곳보다 신의 수가 많기도 한 인도. 인도인들은 신을기반으로 한 삶을 살고 있으나 앞에서 서술한 바대로 신의 은총이 내렸다고 보긴 어려운 점이 많다. 작가는 묻는다. 신은 어떻게, 왜, 존재하느냐고.

 매우 독특한 분위기였고 내겐 좀 어려운 소설이었다.

 2. 폭력의 기원(작은절골에서)

 빈민촌 아이들이 죄책감없이 폭력을 학습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러나 단지 빈민촌이기 때문이 아니다.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부자가 빈자에 대한 폭력은 더욱 빈번하다.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 그것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폭력은 학습되고 전염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폭력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기만 할 뿐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진 않은 듯하다.

 3. 연옥 일기(신릴한 돼지피가수스 Pigasus 혹은 아직 규정되지 않은 세계에서)

 알레고리 소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 떨어진 이들은 기술자들, 즉 메시아를 기다린다. 그곳은 세상의 무수한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가 실패한 공간이다. 이 공간을 설명하는 연옥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미래가 지옥일지 천국일지 모르는 이들의 겪는 혼란의 세계, 그러니까 바로 현실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 지옥 같은 혼란 속에서 아름답지 못한 천국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난 어떤 절망이 깊숙하게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작가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인데다 분석하기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4.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

 오피스레이디의 매매춘을 알선하는 신데렐레 책방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어쩌면 작가는 현대인들이 지식을 활용하는 방식을 매매춘에 빗댄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건 그들은 구조적 해결 방법은 알지 못한 채 도덕적 층위와 현실적 적응의 문제만을 고민하며 산다.

 5. 일천구백팔십 년대식 바리케이드

 산책로에서 시간을 역행하여 재현되는 과거는 누구나가 알 만한, 그러나 과거가 되어버린 투쟁과 저항의 한 단면이다. 작가는 과거에 매여있는 게 아니라 현재를 고민한다. 고민과 함성과 바리케이드는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확산은 빠르나 소리는 작다. 그러나 작은 소리가 모여서 지르는 게 함성이고 작은 목숨이 모여서 만드는 게 바리케이드가 아닌가. 작가의 현재적 고민이 반가웠다.

6. 재채기

 보이지 않는 계급, 보이지 않는다 하여 결코 넘나들기 쉽지 않은 계급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른 계급에 대한 이물감을 재채기로 표현하였다.

 7.  항구적이며 정당하고 포괄적인 평화

 엽편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다. 어쩌면 작가에게 글쓰기란 목적 없는 기다림인지도 모르겠다.

 8. 시속 팔백 킬로미터

 이 역시 자전적 내요을 담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작가가 글을 버렸을 때의 심경을 엿볼 수 있었다.

 9.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

 더 이상 과거형의 문장만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 작가는 그것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상으로 인정한다.

 

 해설을 읽고 나서 백민석 작가에게 한걸음 다가선 기분이 들었다. 그 개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그가 왜 그렇게 무겁고 어두운 소설을 쓰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더불어 내가 왜 이 작가를 좋아하는지도. 동질감이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