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팔코너 - 존 치버, 박영원 옮김, 문학동네

박모모 2015. 8. 17. 22:01

그 누구에게나 자유로울 권리, 혹은 욕망

- 존 치버

분명 해석의 방향이 단선은 아님에도 한 곳으로 향하는 작품에 대한 나의 이해를 억누르기 어려웠다. 존 치버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 중 매니아가 있는 작가로 알고 있다. 단편집을 읽었을 때 뭔가 거친 듯하면서도 분명하고 장식이 없는 느낌이 좋아 기억하고 있는 작가다.

이 작품은 크게 보자면 미국 사회의 표상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세밀한 인간에 대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 뭉뚱그려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게 분명해진다. 주인공 패러것은 마약중독자로서 형을 죽이고 팔코너 교도소에 감금된다. 소설의 외연을 이루고 있는 감금의 메타포는 패러것의 정신을 감금하고 있는 마약중독과 연결된다. 그 두 가지로부터의 탈출에 작가는 어떠한 도덕적 타당성도 부여하지 않는다. 자유를 향한 갈망과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은 그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난 설득하지 않는 작가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교도소 안은 당연하게 온갖 악질적이고 못난 부류의 인간이 가득하다. 패러것은 그들에 대한 혐오와 연민의 감정을 동시에 가진다. 다른 말로 패러것 역시 혐오와 연민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인간인 것이다. 팔코너를 벗어나서 보는 다른 인간들도 기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소설 중간 다른 교도소에서 소요가 일어난다. 감금 당한 자들의 공통된 소망은 구금을 벗어나는 것이다. 소요를 일으키지 않은 팔코너의 죄수들도 동요한다. 그것은 의식주와 관련한 하나의 요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실패하고 만 소요였지만 그것을 통해 교도소 시스템에는 아주 작은 개선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진화하는 방식의 전형이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팔코너란 소설은 사회적 진보와 개인적 진보를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탈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무거운 편이지만 어렵지는 않다. 수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해설에서 본 성경의 인용, 즉 카인과 아벨 모티브는, 그냥 모티브라고 하기에도 너무 흔한 소재 아니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