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 : 무녀굴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 퇴마 : 무녀굴
딱히 기대는 없었다. 공포가 아니라 참을 만했다. 나름 스토리는 흥미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보고 나서 답답한 마음을 누르기 힘들었다.
영화는 신기가 있는 정신과 의사의 신병에 관한 발표로 시작된다. 즉 신기로 인한 병은 일반 정신과적 질병과 구분된다는 이야기다. 아, 신기가 주요 소재구나 싶었다. 그러다 주요 인물이 등장하고 나서 주요 소재는 원혼에 의한 악귀들림으로 바뀐다. 감독이 그걸 구분 못하는 건가? 무당이 되어야 할 운명을 지닌 이들과 나쁜 혼이 씌인 자들의 이야기는 노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뭐, 그렇다 치자. 원한을 가진 악귀에 관한 내력이 나온다. 4.3항쟁에서 토벌대에 의해 유린 당한 무녀가 악귀로 제 원수를 갚으려는 게 기본 모티브인 것이다. 처절하고 억울한 원한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을 거라 짐작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나는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원한의 씨앗을 찾아가는 내용은 너무 길고 지루하고 뻔했다. 또한 길게 다루기 위해서는 그 인과관계를 더욱 치밀하게 만들어야 하고 4.3항쟁이라는 역사적 소재에 대한 입장이 은유적으로라도 드러나야 한다. 너무 무거운 사건인만큼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자신 없으면 차라리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만 언급해도 되었을 것이다. 또한 토벌대에 대한 원한을 가진 혼령이라면 대대로 경찰을 하는 집안에 해꼬지를 하지 않았을까. 혼령이 씌인 인물이 결혼한 시댁 쪽 사람이 거의 죽어나가는데 그저 혼령이 나타나서 그녀의 주변 사람을 죽일 뿐이다. 인과관계에 그토록 긴 분량을 할애했으면서도 정작 인과관계는 전혀 설정이 안 되어있다. 또한 토벌대의 자식인 이상한 목사가 혼령을 없애려고 하는 데에 대한 어떤 치죄의식도 설정되지 않았다. 윗 세대의 업을 물려받은 이들이라면 분명 그러한 의식을 필수적일 텐데 감독이 4.3항쟁에 대해 제대로 역사의식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더불어 굳이 제주의 항쟁이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지역적 특성이 두드러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전후로 그런 식의 대량학살은 엄청나게 많았다. 내륙의 많은 사건들을 놔두고 물로 폐쇄된 지역을 기반으로 할 이유가 있었을까? 또 크게 거슬리는 걸 하나 꼽자면 방송사 피디로 나오는 인물이다. 대체 그 인물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썼을까. 그 인물이 영화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가. 최소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인물들의 비상식적인 상황을 인지하는 인물로서의 역할조차 없다. 없어도 되는 인물을 크게 쓴 이유는 젊고 예쁜 배우 하나를 끼워넣기 위해서였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정말 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80년대식 반전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도록 전개하는 것까지, 차라리 없는 게 깔끔했을 터였다.
스토리를 압축하고 인과관계를 좀 더 치밀하게 설정한다면 재미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포물을 의도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하나도 안 무서웠고 스릴도 긴장감도 호기심도 안 느껴졌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미스테리 스릴러로 만들어졌어야 했던 것이다. 사연부터 인물의 히스토리까지 구구절절 미리 다 밝히고 가니 영화의 내용에 빠져들 수가 없었다. 이 말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장르의 문제와 더불어 구성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두드러진 영화라는 의미다. 오죽 답답했으면 영화 보고 나오면서 나 같으면 구성을 완전히 뜯어고쳤겠다, 말이 나오더라.
본론으로 들어가자. 나 같으면 구성을 이렇게 했을 것 같다.
매우 변덕이 심한 인물의 주변에 이상한 일이 자꾸 생긴다. 대대로 경찰인 집안으로 여자가 결혼한 후부터이다. 그러나 여자가 이상하다는 건 남편밖에 모른다. 여자를 포기할 수 없는 남자는 백방으로 여자의 정신과 치료 방법을 알아본다. 그러다 미스테리한 인물을 만난다. 교수라는데 자신을 밝히는 걸 극도로 꺼린다. 과학적인 치료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걸 안 남편은 고민하지만 만의 하나를 위해 치료를 결정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희소식을 전하러 가던 남편은 악귀에 의해 또 죽임을 당한다. 원래 설정처럼 씻김굿 전문가였던 교수의 아버지가 등장하여 아들을 움직이려 한다. 교수는 신내림을 거부한 자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싶지만 아버지가 모시는 큰신이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악귀의 한을 만나면서 교수는 악귀를 제 힘으로 쫓아낼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아버지를 희생시키며 악귀를 겨우 쫓아내게 된다. 살아난 여자와 딸아이. 그러나 결국 모든 기운을 잃은 아버지를 떠난 큰신이 교수에게 들어가는 걸로 맺는 거지. 아버지는 악귀를 달래 같이 저승으로 가고. 큰 줄기만 이렇게 잡아도 훨 낫겠다. 세부적인 내용까지 고민하지는 않았다. 돈도 안 되는 일을 내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이유는 없지.
영화의 구성이 시나리오에 바탕을 두는 건지 감독의 편집에 의해 달라지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고민해야 할 부분에 고민이 빠져있다는 느낌이다. 뭐, 진짜 고민해서 저렇게 만들었다면 그건 더 심각한 거고.
칭찬할 게 없는 영화도 길게 써보니 재밌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