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의 대지
세상은 사람에 비해 너무 더디지 않은가
- 치욕의 대지(mudbound)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차 대전 전후이다. 흑인은 해방됐지만 차별은 여전했고 여성은 수동적인 역할을 강요 받으면서도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자본주의로 인한 경제적 계급에 의한 차별은 심화되었던 시기다.
영화의 가장 큰 줄기는 인종 차별 문제다. 그러나 영화는 그에 한정하지 않는다. 젠더 문제와 계급 문제를 동시에 다룬다. 치밀한 구성으로 영화는 그 모든 문제를 잘 버무려낸다.
전쟁을 치르고 온 제이미와 론셀은 승국의 병사였음에도 스스로를 영웅으로 여기지 않는다. 전쟁의 경험은 개인에게 고통만을 남길 뿐이다. 전장에서는 비교적 인종 차별이 덜 했던 경험으로 두 사람은 인종을 넘어선 우정을 쌓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의 벽을 그들은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이 우정을, 감동적임에도, 마냥 아름답게만 그려내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운 점이다. 그들은 현실 속에서 경제적으로도 약자인 론셀(흑인)이 겪는 제이미(백인)의 사소한 장난을 에피소드로 다룬다. 차를 가지고 장난으로 론셀을 위협하며 제이미는 즐거워하지만 약자인 론셀을 재미 없다고 정색한다. 물론 이 정도로 그들의 우정이 어긋나지는 않는다. 결국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제이미를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만든다. 제이미의 배려로 론셀의 목숨이 부지되지만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제이미의 탓이 결코 아니다.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관객은 안다. 다만 한 개인의 '좋은 마음'만으로 이 사회가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더불어 인상적인 장면은 전쟁에 대해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제이미는 개인적인 고통에 치중하는 반면 론셀은 그곳에서 존중 받았던 경험이 더욱 크다. 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사람은 입지에 따라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마냥 수동적인 로라는 전형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지만 남편 헨리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점점 불편을 느낀다. 결국 로라는 시동생을 향하고 있던 마음을 먼저 표현하게 되고 시동생의 범죄를 감싸줌으로써 차별의 선봉에 선 하나의 악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혁명적 태도는 아닐지라도 이후 로라의 삶은 분명 달라지리라 예감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백인이어도 빈민인 로즈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은 경제적 계급의 심화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그 안에 깃든 젠더 문제. 더 약자가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헵과 플로렌스 부부. 이들은 소작농으로서 실제 소유하고 있던 농장을 빼앗기는 역사를 겪었지만저항하지 않는다. 울분만으로 현실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헵은 부당한 헨리의 요구에 응하면서 이렇게 답한다. '저희 아이들은 내리지 않을 겁니다.' 다음 세대는 달라야 한다는 걸, 그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정도의 저항도 하지 않고서는 지독한 역사가 반복되리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면면은 이 세상을 통째로 담아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저항보다는 사랑을 찾는 론셀. 그러나 그 결말이 로맨틱해 보이기 보다는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게 개인에게는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패배감이 깔려있다.
어느 한 개인도 그렇게 쉽사리 대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그 어느 배역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영웅을 만들어내지도 않고 근거 없는 낙관으로 현혹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보는 내내 고통스럽고 어쩌면 지루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위대하다. 대단히 잘 써진 장편소설을 보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