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동안에(1, 2) -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 문학동네
이 소설의 화자는 '싸움나무'로 불리는 우주수이다. 천 년을 살아온 나무의 나뭇가지에 밧줄을 메단 만삭의 여인은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태내의 아이를 땅으로 떨어뜨린다. 탄생이다. 우주수는 벅찬 감동을 느끼며 아이에게 '잘 태어났다'고 한다. 나무는 아이의 미래를 본다. 나무 스스로는 우주수가 아니라고 하지만 천 년 동안 인간의 부침을 기억하며 아이의 미래를 분절된 장면으로 본다.
아이는 지극히 개인주의자이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삶을 살기 위해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자를 사랑해 정착을 하려고도 하고 병원에 갇혀 실험 도구가 될 뻔도 하고 불꽃놀이 일을 하다 죽을 뻔하기도 하고 절에 들어가 교감이 깊은 일본원숭이를 조각하기도 하고 선원이 되어 바다를 누비기도 한다. 그 어느 상황에서도 인간과 섞이기를 거부하는 개인주의자지만 일본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경제가 피폐해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군중은 거짓 영웅을 칭송하며 그의 권력에 휘둘린다. 게다가 커다란 지진까지 이어지며 일본 내부에는 반란 세력이 생겨난다. 과거의 이론을 답습할 뿐인 반란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청년이 된 아이는 반란 세력으로 오인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청년이 반란 세력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죽도록 방치한 권력의 개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한다. 일본은 외부와의 전쟁으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정치에 별 관심도 없고 그저 흐르고 싶었던 청년은 음모를 위해 이용 당한다. 결국 청년은 여전히 개인주의적으로, 그러나 한 개인이 아니라 권력의 실세를 향해 테러를 감행한다. 이건 우주수가 내다 본 아이의 미래이다.
그리고 개발업자들에 의해 우주수는 베이고 만다. 베인 우주수는 나무토막으로 살아남아 죽음의 위기에 서있는 아이를 살린다.
굉장히 짧게 요약했지만 매우 긴 소설이며 상념과 철학이 세세하게 깃들어있어 가독성이 좋지는 않다. 더불어 작가의 여성혐오와 소수자혐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매우 불편하다. 겐지 영감, 시대적 요구에 관해 정치 부분에서만 민감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굉장하다. 시대와 개인의 불화를 잘 다루었으며 자유가 무엇인지(개인의 자유에서 보편의 자유로 향하는 여정) 성찰하고 일본인의 수동적인 특성에 대한 혹독한 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대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