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암살주식회사 - 잭 런던, 김이선 옮김, 문학동네

박모모 2019. 10. 16. 14:45

잭 런던의 미완의 유고작으로 널리 알려진 암살주식회사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철학적 사유와 태생적, 환경적 경험치가 풍부해 잭 런던의 작품 스타일은 매우 다양하다. 한계가 뚜렷한 작가였지만 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잭 런던을 좋아한다.

 

미완의 작품을 출간한다는 것. 작가의 입장은 어떠할까 생각해 보았다. 나 같으면 싫을 것 같은데 그를 아끼는 독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나는 독자로서 이 소설에 접근해 보기로 했다.

 

스릴러물, 그러니까 장르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는 이 소설 속의 사유는 다양하고 풍부하다. 생명이라는 가치는 존중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냉정한 사람들. 암살자이 모두 철학자에 준하는 인물이라는 게 독특한 설정이다. 그들은 자신의 도덕과 규율에 철저하다. 죽을 만해서 죽이는 사람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고 우주의 섭리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갈등은 도덕과 규율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촉발한다. 도덕과 규율을 지키려고 할수록 그것들이 인물을 더욱 속박한다. 강박적이기까지 한 그들의 규율이 미진하다는 걸 인정한 건 보스 뿐이다. 결국 그들은 도덕과 규율의 틀 안에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암살자들이 끝까지 도덕과 규율을 지켜내는 것이다.

 

잭 런던이라면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덕과 규율의 충돌로 인해 개인의 도덕과 규율이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며 결국 그 두 가지 문제로 갈등이 극화되어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파멸시키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결말이 주제를 바꾼 셈이다. 홀이라는 인물로 보여주는 더 큰 의미의 도덕, 사회적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결말에 이르는 게 사회주의자였던 잭 런던에 더 충실한 결말 아니었을까.

 

장르소설 형식이라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