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세상에 예쁜 것 - 박완서 수필집, 마음산책

박모모 2019. 7. 9. 07:18

세상에 예쁜 것(마지막 수필집)

 

따님이 작가가 프린트해놓았던 것을 모아 책을 낸 것.

박완서 작가 자신의 이야기(소설로 거의 다 쓴 내용).

문학을 하고 싶었던 건 대학에 입학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맞이한 풍파. 깊은 내면에서는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작가를 달구었던 것은 창작욕이 아니라 증오였다. 복수심과 증오는 세월의 다둑거림으로 위무받을 수 있을 뿐, 섣불리 표현되어선 안 된다는 걸 차차 알게 된다. 쓰지 않고 보통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삶을 살고 배웠던 경험은 데뷔작부터 원숙한 글을 쓰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박경리 선생에 대한 회고-개인적 친분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성정은 서로 매우 다르다. 단단하고 매끄러운 바윗돌 같은 박경리 선생, 가시가 돋친 아름다운 선인장 같은 박완서 작가. 박경리 선생은 담배가 병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끽한 사람. 박경리 선생은 육체노동을 많이 했다. 삯바느질부터 해서 농삿일 등. 젊은 날엔 생계를 위해서였고 나중엔 후배 작가들이 편하게 글을 쓰게 해주려고였다. 박경리 작가는 육체노동을 정신노동의 휴식으로 삼았다. 또 육체노동의 고됨을 달래려 정신노동을 했다. 정반합. 이 단어가 떠올랐다.

박완서 작가의 일면(문장) “잠이 안 오면 내일은 어떻게 지내나 근심되는데, 자정이 넘도록 잠이 안 오면 와인을 한 잔 마십니다. 와인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혼자 마실 때 특히 레드와인을 선호하는 것은 그 빛깔의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혼자 마시는데도 타인을 의식한다 할까, 내가 혼자 소주를 마시는 것을 누가 보면 얼마나 궁상맞아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대로 된 잔을 꺼내어 마십니다. 레드와인은 조금 사치스러운 느낌이 나잖아요. 초라하고 청승맞기보다는 혼자 마시더라도 약간의 사치를 하고 싶은, 그런 거 있잖아요? 일종의 허영이지요. 저도 허영이 많습니다. 보는 사람도 없어서 아무렇게나 마셔도 되는데,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있을 때는 소주나 양주도 마실 수 있는데, 혼자 마실 때에는 이상하게 멋을 부립니다. 치즈 같은 것도 예쁘게 썰어놓고 마십니다.”-트위터나 인스타를 하셨으면 잘하셨을 것 같다. 사실 인스타보다는 트위터형 인간-“6.25전쟁 중 한 달 남짓을 파주 쪽 산골에 숨어서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종이와 활자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그 시간을 견디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곧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마침 다 떨어진 벽지를 군데군데 땜질한 신문지 활자가 보였다. 나는 그 얼마 안 되는 활자를 읽고 또 읽고 나중에는 반닫이 위에 올라서서 천정을 땜질한 활자까지 읽었다.”

여러 유명 인사에게 쓴 편지와 유명 인사에 대한 추모글 여러 편 중 다소 의외였던 한 편. 자연 질서 안에서(김창완 씨 보셔요)-친분이 있었던 듯. 어쨌건 작가는 내내 마당에 핀 꽃과 꽃에 모여드는 벌과 자연에서 난 먹을거리만 이야기한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자연 질서 안에 있다는 게 한없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창완 씨하고도 이 평화, 이 행복감을 나누고 싶습니다. 자전거 타고 방송국에 출근하는 김창완 씨 옷깃을 부풀리는 바람에 실려.”-아마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은 자연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