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리만의 기하학 - 권보경 소설집, 푸른사상

박모모 2019. 10. 15. 17:57

1. 강산무진도

 

액자형 소설. 예술이 소재인 소설은 결국 그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쓰는 행위에 대한 질문이 된다. 작가는 정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저 마음을 담는 도구일 수도, 모든 걸 바쳐야 하는 존재의 이유일 수도 있다는 것. 물론 작가는 후자 쪽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 등단작이라서인지 조금 엉성한 면이 있지만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신선함이 있다.

 

2. 리만의 기하학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이다. 리만의 기하학을 이론으로 하여 시간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다. 예기치 못한 모든 불행은 어쩌면 이미 예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함유한다.

 

3. 초록 식탁과 빨간 의자와 고양이가 있는 정물화

 

유아기 때의 학대의 경험은 성인이 된 후에도 온 삶을 지배하기도 한다.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 있지만 여성들이 흔히 겪는,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최근에서야 표면에 드러난 유아 친족성폭행의 문제를 다룬다. 사건 이후 주향의 부모는 결별을 선택했지만 가해자에 대한 온당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조금 더 드러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

 

4. 승영

 

보이지 않는 칼날을 가진 칼, 승영. 알레고리적 설정이다. 이 소설은 알레고리 장르에 충실하게 리얼리즘으로 그려진다. 보이지 않는 칼날, 즉 계급 차이로 인한 다양한 문제들, 하층민을 향한 폭력은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 일이 되고 마는 것.

 

5.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어

 

죽은 아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주인공은 결국 해한의지를 갖고 아이가 환생하는 소설을 써낸다. 화자는 소설 속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화자이면서 또 다른 자아이다. 결국 화자는 자신이 겪어내야 할 몫을 겪어낸 후 글을 마친다.

 

6. 검선

 

조선시대 검객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결국 원수를 갚는 일은 살육을 더욱 퍼트리는 행위였다는 것, 천하무적의 병서는 내면을 단련시키는 책이었다는 것. 형식과 문체는 새로우나 소재, 주제, 내용은 뻔하다.

 

7.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트릭의 기법. 소설 속 주인공인 휘찬은 자신이 소설을 쓴다고 여기며 혼란을 겪는다. 자신이 겪었던 일을 작가인 김사강이 마치 본 듯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사강에게는 이 이야기가 소설이지만 휘찬에게는 이 이야기가 소설이 아닌 것이다.

 

8. 야뇨

 

모멸을 견디지 못하고 성욕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추레하고 비열한 전형적인 아이러니형 인물이 그려진다. 전형적인 한국남자이기도 하다. 여성의 친절을 연애 감정으로 오해하고서도 모멸을 당했다고 생각해 성폭행을 하고야 마는 그는 그때부터 야뇨증을 겪는다. 매우 상징적이다. 남자는 정액과 배뇨를 같은 데서 하기 때문이다. 즉 성욕과 삶에 대한 욕구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은 사정과 배뇨를 구분한다. 그것을 핑계로 삼는 자의 추락한 모습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