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전후 - 김원우. 강
변명하는 자들을 위한 랩소디
- 돌풍 전후, 나그네 세상, 재중동포 석물장사
이 책은 한 편의 장편과 두 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것이 장편, 뒤의 것 두 편이 중편이다. 작품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나는 작가에 대해 먼저 얘기하고 싶다. 서울대 출신의 김원우는 유명 소설가인 김원일의 동생이다. 형제지만 쓰는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형이 집안 얘기를 다 써서 본인은 쓸 게 없다고 투덜거렸다는 일화는 전해 들은 것이다. 내가 굳이 작가의 출신 대학을 표기한 이유는 처음 이 작가를 접했던 20대 초반의 난감함이 떠올라서다. 최수철과 함께 서울대 출신의 소설가로 자꾸 묶이게 된 데에는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지적이다못해 현학적인 어휘와 문장들, 그것 때문에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이나 주제에 오히려 접근하기 힘들었던 기억. 2~3년 전 김수철의 '침대'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 의외로 잘 읽히면서 탄탄한 서사구조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에 비해 오랜만에 읽은 김원우의 소설에서는 실망 이상의 감정을 갖기 힘들었다.
돌풍 전후는 소위 지식인이나 글쟁이들의 비겁한 변명을 다루고 있다. 회고록도 아닌 회고담 수준의 글을 남기고 싶다고 전한 작중 주인공은 사실 남에게 보이기 껄끄러운 외도의 기억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다. 회고담이라는 변명으로 눙치기엔 석연치 않은 설정임에도 화자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데에 나는 상당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 외의 입담으로 기술된 주인공의 외도에 대한 기억은 독자의 관음을 자극한다. 즉 재미가 영 없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학적이고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예스런 어투와 어휘(주인공이 나이 든 사람이긴 하지만)의 사용은 작가가 부러 현대적 기법을 거부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더불어 여성에 대한 시선은 몇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 듯 고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고루함이 혹여 깨지는 과정이 보여지나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중편인 나그네 세상. 남의 일을 대하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태도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당사자의 심중을 오리무중으로 처리한 데에 나는 좀 불만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한 색깔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작중 인물을 통해 드러내 작가의 여성관은 실망을 넘어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마지막 작품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가면서 속독을 해버릴 정도로 지루하고 구태스러웠다.
오래 글을 써온 중견작가에게 내가 이런 악평을 내려도 되는지, 더불어 내가 판단한 게 맞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아닌 걸 기라고 하면서 살고 싶진 않으니 익명에 기대 솔직하게 풀어놓을 수밖에. 작가의 자기 성찰이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 건가에 대한 숙제로는 꽤 훌륭한 텍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