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이난아 옮김, 민음사

박모모 2015. 8. 26. 19:35

진실과 가치에 관한 대서사, 내 이름은 빨강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이 줄 사람에게 안 주는 경우는 있어도 안 줄 사람에게 주는 경우는 없다던 속설에는 매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소설은 장마다 교차시점으로 서술된다. 이것은 초보자의 경우엔 통일성을 해치고 긴장도를 낮추게 되어 권하지 않는 것인데 대작가의 서술엔 오점은커녕 오히려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야기는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추리의 기법은 흥미를 유발시키는 데 적당하다. 어려운 점은 그 흥미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추리소설에서는 사건 해결 방식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정통문학에서는 그 안에 다채로운 서사와 작가의 세계관이 조화롭게 그려져야만 한다. 이 모든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 작품이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이 소설의 구체적 이야기를 요약하고 싶지는 않다. 길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소설을 지루하게 요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이 작품 안에서 작가가 보여주려 했던 것들을 메모하는 선에서 그치려고 한다.

 공간적 배경인 이스탄불은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곳이다. 이슬람을 단지 종교로만 이해한다면 이 소설의 이야기가 과장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슬람인들에게 이슬람은 종교이고 사회이고 문화이고 정치이고 예술이다. 즉 이슬람은 단지 종교가 아닌 총체적 개념으로서 신자들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지배력이 막강하다는 뜻이고 그만큼 폐해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유일신의 대개가 그렇듯이 이슬람 역시 신에 대한 지나친 맹종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문제가 크다. 작가는 이를 정통으로 고발한다. 예술을 한다는 이들도 종교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의 예술과 달리 고지식하고 개별성에 엄격하다. 그런 개별성을 추구하려는 예술가와 고지식한 예술가 사이의 신경전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질문인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신성'은 어떤 면에서 사회적 질서이다. 즉 기존의 가치체계라는 것이다. 그 속에 속해 있을 때의 안온함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예술가들의 모순적 행태가 비단 이슬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까. 자신에게 유리한 입지를 위해, 권력을 위해, 명예를 위해 그들은 오히려 비인간적 행태를 일삼기도 한다. 종교를 통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현실, 그 정치는 기실 다른 정치와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비루하고 비열하다는 걸 작가는 속살까지 파고들어 보여준다.  

 이슬람 세계 안에서의 차별과 계급성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모하메드 시절엔 오히려 그런 차별에 저항하고자 하였는데 교리와 신성이라는 이유로 기득권자들은 차별을 부추긴다. 기득권자들이 종교를 이용하는 전형적인 방식인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작가는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마치 작가와 두뇌싸움을 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뒤통수를 치는 반전은 없지만 끝까지 내가 짐작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숨기는 작가의 능력에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총평을 간단히 요약해 보겠다.

 '진리'라 믿는 것에 전 생을 거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 '진리'라는 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늘 변해왔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