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그 남자네 집-박완서, 세계사

박모모 2019. 7. 4. 08:40

그 남자네 집(단편을 기초로 한 장편소설)

한국전쟁 중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이웃의 먼 친척 한 살 아래의 남자. 데이트 비용 마련을 위해 남자가 어미를 착취하는 걸 모른 척하는 화자. 연애에 전적으로 몰두했던 건 그 시대에 할 수 있었던 사치였다고 서술함. 언제 죽을지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전쟁의 와중이었기에. 오히려 전쟁이 끝난 후 살아가야 한다는 중압감이 그들의 집중도를 흩트려 놓는다. 화자의 남편은 이념을 취향으로 설명한다. 화자는 화를 내지만 남편은 찬양과 동원으로 획일화 시키는 당시의 좌익에 대한 감각적 반감으로 설명. 이념을 취향으로 설명하면 왜 안 되는가, 화자도 동의하게 됨. 대신 남편은 취향에 대해 관대함.

시가-그 집구석(먹거리에 모든 정성을 쏟아 붓는, 먹기 위해 살아가는 시가의 가통을 경멸)

과거의 장소를 찾았을 때 기억보다 길이 좁거나 크기가 작다는 걸 느낌. 작가의 표현. “내 머릿속 지도의 거리는 실재하는 거리가 아니라 다만 확보하고 싶은 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전쟁 당시의 선술집에서의 시낭송.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

착한 사람에 대한 화자의 문장. “착한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만 착해야 된다고 믿기 때문에 도덕적인 책임은 으레 남한테 덮어씌우려 드는 법.” 인간에 대한 고찰.

그 남자에게 청첩장을 준다. 남자는 운다. 화자도 운다.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일종의 감정 정리. 받아들임.

변화에 대한 문장. “연탄이 지겨워진 건 더 편리한 프로판 가스가 보급되고 나서고, 살인가스로 저주받기 시작한 것은 주거환경이 중앙난방식 아파트로 변하면서부터였다. 이용 가치 있는 게 사라지려면 꼭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건 인간의 경우만이 아닌 것 같다.”

그 남자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 “나는 작아도 좋으니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새끼 까고 싶었다. 그 남자네 집도, 우리 집도 사방이 비 새고 금 가고 조만간 무너져 내릴 집이었다.” 여기서 집은 단순히 건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정, 그리고 그 사람의 성향까지 포함하는 것.

첫사랑 화자를 잊지 못하는 그 남자.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이 생김. 밀회. 그 남자(현보) 뇌 속에 벌레. 뇌수술 후 실명.

임신과 출산. “나는 옆에 누워있는 핏덩이가 하나도 예쁘거나 소중하지 않았다. 낳아놓기만 하면 모성애는 저절로 우러나는 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저것 때문에 아무데도 자유롭게 갈 수 없고, 정 가고 싶으면 달고 다녀야 할 생각 때문에 나는 수렁처럼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헤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우울증이었다. 모성애가 우러나기는커녕 일생일대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배고파하는 아기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서 서럽게 울었다. 아기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유 때문에 우는 자신을 마녀처럼 느꼈다.”-모성애에 대한 거부감. 키우면서 모성애가 생겨남.

4남매 출산. 양옥집으로 이사. 생기 없는 중년의 남편에게 바람을 피우라고 권하는 화자. 대신 몰래. 돈이 없어 바람 못 피운다는 남편. (도발적)

화자의 본가를 드나들고 있었던 현보. 화자와 만남. 눈이 보이는 것처럼 행동함. 얼굴은 도리어 청춘으로 돌아감. 제 자신은 살이 찌고 볼썽사나운데 화자는 아직도 어린애처럼 구는 그 남자에게 화가 치밀어 어린아이에게 하듯 마구 혼을 냄. 그렇게 첫사랑과 밀회의 기대는 끝남. 그 남자의 부고. 그러나 화자는 그 남자의 엄마 장례식 때 이미 그 남자를 보냄.

 

춘희라는 인물-화자의 소개로 미군부대 취업. 생활고 해결을 위해 양공주가 됨.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 일인데 가족들도 이웃들도 그녀를 멸시함. 잦은 중절 수술로 인해 불임이 되었음. 평생 불감증이었다는 고백은 그녀 역시 양공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억울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터. 국가 산업을 일으킬 정도의 미군 대상 성매매가 이젠 역사로 기록되는 현실. 그 개인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말하는 춘희. 춘희의 입을 통해 질곡 많은 이 나라 여성들의 삶의 한 단면을 드러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