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 윌리엄 포크너,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인간과 자연의 관계, 혹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커다란 물음
- 곰
짧은 분량임에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이전에 두 권의 포크너 소설을 읽었지만 이보다는 질서가 있었다. 시간도 사건도 인물도 독자가 매우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들게 그려진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크게 보아 성장담이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편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해설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1장만으로도 완성된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질만큼 깊은 울림이 있었다. 소년 아이작이 주변 인물들과 함께 곰 사냥에 나서게 되는 몇 년의 시간을 그렸고 4장에서는 성인이 된 소년이 그 이후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서 발전된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들어있다.
올드벤이라는 이름까지 있는 곰이라는 존재는 그저 하나의 짐승이 아니다. 늙고 영리한 곰이라는 설정에 맞추어 자연의 큰 섭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물론 인간에게 자연은 분명 극복의 대상이고 곰 역시 사냥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자연을 욕망의 대상으로 여긴 분(인디안과 백인의 혼혈)은 곰을 잔인하게 죽이고 만다. 이미 정신적으로 유치한 성향을 많이 보였던 분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다람쥐가 자기 것이라며 총구를 바위에 찧어대며 발작적으로 행동하는 장면은 내겐 곰의 혼령이 작용한 듯 보이기도 했다. 올드벤을 사냥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개 라이언에 대해서도 소유욕을 거침없이 드러내었을 때, 사실 나는 그것이 어떤 정의 일종이라 여겼는데 소설 속에서는 욕망의 기제로 작용한 것이었다. 곰이 죽고 샘(인디언과 흑인의 혼혈)은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린다. 그는 더 이상 의식(사냥)을 치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4장에서는 인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백인으로서 남의 땅을 빼앗아 인디언과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 부를 이룩해낸 조부에 대해 아이작은 정면으로 부정한다. 자연이라는 틀 안에서 어떠한 인간도, 어떠한 짐승도, 어떠한 땅도 그렇게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걸 어릴 때 곰 사냥의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다. 그것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설파하는 장면이 너무 지루하고 집중이 안 되었다. 쉽게 읽을 내용은 아니었지만 집중력이 떨어져 전체 맥락만 파악하고 말았다.
나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를 여기에 기록해 두기로 한다. 처음 곰 사냥에 나서게 된 소년은 곰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곰이 소년을 보고 간 흔적은 소년 스스로 깨우친 것이 아니었다. 곰을 만나기 위해 소년은 위험을 무릅쓰고 총을 버린 채 나침반에만 의지하여 숲으로 들어간다. 영험한 짐승의 기운을 느낀 소년은 두려움보다 깊은 전율을 느낀다. 자연 그대로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 나 역시 포크너의 위대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렵고 난감한 소설임에는 틀림없지만 전체 맥락을 파악하며 읽어간다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포크너님은 위대하다.